평양 조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322
한자 平壤 趙氏
영어공식명칭 Pyeongyang J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평양 조씨 본관 - 평안남도 평양시
입향지 평양 조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구성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평양 조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구성리
성씨 시조 조춘
입향 시조 조순도

[정의]

조춘을 시조로 하고 조순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개설]

평양 조씨(平壤 趙氏)는 조춘(趙椿)을 시조로 하며, 조선 개국 공신인 8세손 조준(趙浚)이 유명하다. 평양 조씨가 역사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충렬왕 때의 훈신 5세손 조인규(趙仁規)에 이르러서이다. 조인규는 평양부 상원에 거주하던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뛰어난 몽골어를 바탕으로 자의도첨의사사평양군에 봉하여지고 선충익대보조공신이 되었다. 또 조인규의 아들들이 모두 재상의 반열에 올라 가문이 번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연원]

충청북도 청주에 세거하는 평양 조씨는 조준(趙浚)과 조견(趙狷)의 형 조정(趙靖)의 후손이다. 조정은 예의총랑(禮儀摠郞)을 지내고, 아들 조의방(趙義方)세종 때 나주목사, 이조판서에 오르는 등 선대에 이어 관력을 이어 갔다. 평양 조씨 중에서 판서공파로, 판서공파조(判書公派祖)는 10세손 조율(趙溧)이다. 조의방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한 후 숭록대부 이조판서에 올랐다. 조율의 묘소는 내수읍 구성리에 8세, 9세와 함께 설단하였다. 후손들은 청주와 음성, 괴산 일대에 세거하고 있다. 11세손 조충산(趙忠山)은 무과에 급제하여 상장군겸좌우군지휘사를 지냈고, 12세손 조빈(趙玭)은 병조판서를 지냈다.

[입향 경위]

청주 입향조로 알려진 13세 조순도(趙順道)는 무과에 급제한 후 1489년(성종 20) 서산군수를 지내고, 1494년(연산군 3) 훈련원부정을 지냈다. 이후 충청병마절도사로 부임 중 사패지지(賜牌之地)로 받은 상당산백화산 사이 구성마을에 묘를 마련하면서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평양 조씨는 85가구, 284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조순도의 묘는 첫째 부인 진주 정씨와 쌍분이며, 둘째 부인 연안 김씨는 마주 보이는 능선상에 있다. 조순도는 1854년(철종 5) 곡수서원(曲水書院)에 추향되었다고 전한다. 조빈의 후손은 내수읍 구성리 신화동마을에 세거하며 소문중을 이룬다. 신화동마을의 후손들은 마을 뒤쪽에 1993년 신화사(莘化祠)를 건립하여 선조에 대한 제향을 이어 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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