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320
한자 東萊 鄭氏
영어공식명칭 Dongrae Je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동래 정씨 본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입향지 동래 정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산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동래 정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산리
세거|집성지 동래 정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미천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정회문|정지원
입향 시조 정신연

[정의]

정회문 또는 정지원을 시조로 하고 정신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시조는 지백호의 원손(遠孫)으로 전하는 신라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이다. 다만 현재 전하는 족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을미보』에서는 시조로 정회문을 두고 2세는 정지원(鄭之遠), 3세는 정문도(鄭文道)로 이어지는 세계를 적고 있다. 그러나 후손 문안공(文安公) 정항(鄭沆)의 묘에서 아버지 정목(鄭穆), 할아버지 정문도, 증조할아버지 정지원까지의 세계가 확인되면서 『을미보』 이후 1716년 편찬된 『병신보』에서는 세계가 확실한 보윤공(甫尹公) 정지원을 1세조로 하였고, 시조 정회문은 권두(卷頭)에 따로 기록하였다. 즉 시조는 정회문으로 하되 세계가 분명치 않아 책머리에 올리고, 정지원을 기세조(起世祖)로 재인식한 것이다. 동래 정씨의 1세조 정지원의 후손은 동래를 본관으로 하면서 가문이 번성하였는데 특히 5세손 정자가(鄭子家)의 아들 정보(鄭輔)의 교서랑공파(校書郞公派)와 정필(鄭弼)의 첨사공파(詹事公派)가 큰 줄기를 이루었다.

[입향 경위]

진사공파(進士公派)의 남일면 가산리 입향조는 정신연(鄭新衍)으로 알려져 있다. 유허비를 참고하면 낙은처사 정공이 임진왜란의 병화를 피하여 현재의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산리로 내려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령공파(高靈公派)의 문의면 입향조는 25세손 정동원(鄭東元)으로 알려져 있다. 1730년 출생하여 1768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생존 연대를 보면 대략 18세기 중반경에 문의에 들어와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1930년 실시한 국세 조사 통계 자료에 의하면 동래 정씨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산리에 72가구가 거주하였다.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동래 정씨는 369가구, 1,286명이 거주하고 있다.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미천리에는 동래를 본관으로 하는 고령공파(高靈公派)가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가산리동래 정씨 진사공파의 세거지이다. 현재 마을 입구에 ‘진사공파 세거지’ 표석과 1965년에 세운 ‘낙은 동래 정공신연지유허비’가 있다. 또한 효자 정기엽(鄭基燁)의 정려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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