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남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303
한자 宜寧 南氏
영어공식명칭 Uiryeong Na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540년경 - 의령 남씨 청주 입향
본관 의령 남씨 본관 - 경상남도 의령군
입향지 의령 남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세거|집성지 의령 남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의령 남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지도보기
성씨 시조 남민
입향 시조 남홍

[정의]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홍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의령 남씨(宜寧 南氏)의 시조는 당나라 사람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김충은 당나라 헌종 때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귀국하던 중 풍랑을 만나 신라 유린[현재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 땅에 머물게 되었다. 김충은 당시 안녹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안사(安史)의 난’으로 국내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신라에 귀화하였다. 경덕왕은 김충이 남쪽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南氏) 성을 내리고, 이름을 ‘민(敏)’으로 고치고 영양(英陽)을 식읍으로 하사하여 영의공(英懿公)에 봉하였다. 의령 남씨의 선계는 고려 후기 남민의 7대손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이 영양과 의령, 고성으로 나뉘어 각각 살게 되었다. 첫째 아들 남홍보(南洪甫)는 군기시주부를 지내고 영양군에 봉하여졌으며 영양 남씨의 시조가 되었다. 둘째 아들 남군보(南君甫)는 고려 후기 충열왕 때 밀직부사를 지냈는데, 영양에서 의령으로 이거하면서 의령 남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셋째 아들 남광보(南匡甫)는 고성으로 이거하여 고성 남씨의 시조가 되었다.

[입향 경위]

의령 남씨가 청주에 입향한 것은 강무공(剛武公) 남은(南誾)의 5세손 남홍(南鴻)이 진천군 덕산면에서 1540년경 청주로 정착하면서부터이다. 남홍은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지냈다.

[현황]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의하면 의령 남씨는 202가구, 646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의령 남씨가 진천에서 청주로 이주한 서면 신정[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백봉산 일대]은 ‘남씨촌(南氏村)’이라고 불릴 정도로 의령 남씨 강무공 후손들이 대를 이어 온 세거지이다. 현재 백봉산 자락에는 ‘강무공 사당’이 있다. 조선 개국을 시작으로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가문의 번성을 이룬 의령 남씨는 청주의 봉명동 외에도 남일면 일대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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