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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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城 金氏 |
영어공식명칭 | Uiseong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용 |
본관 | 의성 김씨 본관 - 경상북도 의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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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의성 김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
세거|집성지 | 의성 김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등동리 |
세거|집성지 | 의성 김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구방리 |
성씨 시조 | 김석 |
입향 시조 | 김담 |
[정의]
김석을 시조로하고 김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의성 김씨(義城 金氏)의 시조는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29세손 김석(金錫)이다. 경순왕과 낙랑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이자 고려 태조 왕건의 외손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하여졌다. 이후 후손들은 본관을 의성(義城)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의성 김씨의 선대는 김일(金逸), 김홍술(金弘術), 김국(金國), 김경진(金景珍), 김언미(金彦美), 김습광(金襲光)으로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청주 일대에 세거하고 있는 의성 김씨는 고려 말에 금오위별장(金吾衛別將)을 지낸 김공우(金公瑀)[일명 공우(公祐)] 대에 크게 번창하였다. 이후의 세계는 김공우의 아들 김용비(金龍庇), 김용비의 아들 김의(金宜)·김서지(金瑞芝)·김태권(金台權)으로 이어진다. 김태권의 둘째 아들 김거익(金居翼)은 고려 때 출사하여 정당문학겸성균악정(政堂文學兼成均樂正)을 지냈으나, 고려왕조가 멸망하자 부여 반원성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김거익은 조선왕조가 건국된 이후 태조가 여러 번 우의정에 제수하였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
[입향 경위]
충청북도 청주 일대에 처음으로 입향한 사람은 김거익의 셋째 아들 김담(金澹)이다. 의성 김씨의 한 족보에는 김오(金澳), 김미(金湄), 김준(金浚), 김항(金港), 김발(金潑)을 김섭(金涉)의 동생으로 적고 있고 또 다른 족보에는 김담을 김비(金渄)의 동생으로 적고 있다. 하지만 김담의 부인 보성 오씨(寶城 吳氏)의 비갈에는 김담이 김거익의 적자이고, 다섯 아들을 둔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비갈의 내용을 따른다.
[현황]
상당구 문의면 등동리 정가울마을과 상당구 미원면 구방리에는 의성 김씨 집성촌이 있다.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의하면 의성 김씨는 124가구, 414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김담의 묘소는 문의면 품곡리에 있다. 김우옹(金宇顒)은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청주 봉계서원에 배향되었다. 김선복(金善復)은 임진왜란 때 조헌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종군하였다. 상당구 문의면 등동리에 충신각이 세워졌으나 현재는 문의문화재단지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