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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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恩津 宋氏 |
영어공식명칭 | Eunjin S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용 |
본관 | 은진 송씨 본관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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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은진 송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
세거|집성지 | 은진 송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 |
성씨 시조 | 송대원 |
입향 시조 | 송세량 |
[정의]
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송세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은진 송씨(恩津 宋氏)의 시조는 송대원(宋大原)이다. 송대원은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은진군(恩津君)에 봉하여졌다. 원래 우리나라의 모든 송씨는 송주은(宋柱殷)을 도시조로 삼고 있는데, 송주은은 당나라의 호부상서였다가 삼국 시대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고려 때 송자영(宋自英)은 송유익(宋惟翊)·송천익(宋天翊)·송문익(宋文翊) 3형제를 두었고, 각각 여산 송씨·은진 송씨·서산 송씨의 시조가 되었다. 은진 송씨는 송천익의 후손이며, 이후 세계가 제대로 전하여지지 않아 고려 때 판원사를 지낸 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있다. 13세 송방조(宋邦祚)의 아들 대에 송시영(宋時榮)은 충현공파, 송시염(宋時琰)은 빙호공파, 송시담(宋時倓)은 부훤당공파로 갈라졌다.
[입향 경위]
은진 송씨가 충청북도 청주에 처음 입향한 것은 송여해(宋汝諧)의 둘째 아들인 10세 송세량(宋世良) 때이다. 선조가 양주 등 경기도에 살았는데 4세손 송명의(宋明誼)가 처음 회덕에 내려와 회덕 일대에 세거하였다. 송세량은 진사가 된 후 건원릉참봉을 지냈고, 중종 때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에 입향하였다. 송세량의 묘갈은 김안국(金安國)이 찬하였고, 묘표 음기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찬하였다. 은진 송씨 가문은 청주에 들어와 고성 이씨·안동 김씨·안동 권씨·문화 류씨·한산 이씨 등과 혼인하였고, 사마시 입격자 11명을 배출하는 등 일찍부터 사회·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여 지역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현황]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은진 송씨는 312가구, 978명이 거주하였다.
[관련 유적]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에는 송세량(宋世良)과 송방조(宋訪祚) 및 송시영(宋時榮)의 묘소가 있고, 송시영을 제향한 충현사(忠顯祠)가 있다. 송방조의 동생 송갑조(宋甲祚)의 셋째 아들이 바로 송시열이다. 송시열은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과 괴산 화양서원(華陽書院) 등 많은 서원들과 문묘에 제향되었고,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남겼다. 은진 송씨는 남일면 화당리 일대에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고, 대부분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회덕동 주변에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종산은 남일면 화당리와 남이면 문동리 및 문의면 남계리에 있다. 후손들은 여러 점의 송시영 교지와 은진 송씨 종중의 회의록과 규약 및 수입 기록 등 가문의 운영에 대한 여러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