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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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 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도연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85년 - 김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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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49년 - 김식 사망 |
본관 | 경주 김씨 본관 - 경상북도 경주시 |
입향지 | 경주 김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 |
세거|집성지 | 경주 김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 |
세거|집성지 | 경주 김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 |
세거|집성지 | 경주 김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내산리 |
성씨 시조 | 김알지 |
입향 시조 | 김식 |
[정의]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개설]
경주 김씨(慶州 金氏)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 태사공파와 판도판서공파, 계림공파 등의 여러 계파가 입향하였다. 경주 김씨의 계파들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내산리 등지에 세거하여 왔다.
[연원]
경주 김씨는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전한다. 이후 김알지의 7세손 미추왕(味鄒王)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까지 38명의 왕을 배출하여 왕족의 자리를 지켰으며 경주(慶州)를 비롯한 600여 관향(貫鄕)으로 분적되었다. 김일지 계통의 김씨 중에서 경주 김씨 인구 수가 가장 많다. 경순왕의 셋째 아들인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鐘)과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을 일세조로 하는 계통이 대표적이다. 청주시에는 김인관(金仁琯)을 파조로 하는 태사공파, 김장유(金將有)를 파조로 하는 판도판서공파, 장군공 김순옹(金順雄)을 파조로 하는 장군공파 등의 후손들이 주로 세거하고 있다.
[입향 경위]
태사공파는 김인관의 16세손 김식(金埴)[1585~1649] 때 청주에 입향하였다. 김식의 호가 ‘송곡’인 것으로 보아 김식이 정착한 곳은 외북리[현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 송곡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화계동의 경주 김씨는 김세필(金世弼)의 6대손 김재성(金載成)이 이인좌의 난 때 음성군 생극[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서 북이면 송정리[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송정리]로 피난 오면서 시작되었는데, 손자 김시구(金時耈)가 죽자 부인 능성 구씨가 송정리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판도판서공파는 김장유의 9대손 김가항(金可恒)이 오창읍 신평리로 이거하였고, 현손 김응린(金應麟)이 신전동으로 입향하여 세거하였다. 장군공파는 김순웅의 14대손인 김인문이 세조 때 미원면 내산리에 입향하여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현황]
집안별 인구 통계에 따르면 경주 김씨는 충청북도 지역에 2만 7310가구, 8만 5794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청주시에는 1만 4387가구, 4만 6706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판도판서공파의 김정(金淨)이 청주시 상당구 이정골로 115-8[용정동 120]에 있는 청주 신항서원에 제향되었다. 충·효·열과 관련하여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다락리에 김을생 효자각이 있고, 서원구 남이면 구암리에 김양호 부부 정효각(金養浩 夫婦 旌孝閣)과 김용호 부부 효열각(金龍浩 夫婦 孝烈閣)이 있으며, 서원구 남이면 척산리에 경주김문 충효각(慶州金門 忠孝閣)이 있다. 그리고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석성리에는 김한정 충신각이 있고,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에는 김정구 효자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