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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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住生活 |
영어음역 | Jusaenghwal |
영어의미역 | Housing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집필자 | 전미영 |
[정의]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가옥을 기반으로 영위해 온 주거 형태와 공간 배치 및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생활.
[개설]
전통가옥은 상류층의 경우 기와집, 일반 서민들은 짚으로 만든 초가집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지역별로 기후에 따라 집의 구조와 건축 재료에서 차이가 났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정부가 시행한 새마을운동 사업 중 하나인 지붕개량 사업으로 초가지붕은 슬레이트나 양기와 혹은 함석으로 바뀌었다. 이후 1980년대에 급격한 경제발전과 서양식 주택들이 유입되면서 처음 주택을 지을 때 서양식으로 짓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외관은 전통가옥을 유지하더라도 내부는 서양식 입식 부엌으로 변형시키고 욕실 안에 좌변기를 넣어 욕실과 화장실을 통합하였으며 침대·식탁 등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안산시의 경우도 이러한 전반적인 사회적 흐름에 놓여 있었으며, 특히 산업도시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변화되었다. 현재는 청문당·경성당과 같은 향토 유적을 제외하고는 전통가옥 특히 초가집과 같은 일반 서민가옥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안산 지역의 전통 서민가옥은 구전을 통해 집의 구조 및 건축 재료 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전통적 서민가옥]
우리나라의 전통가옥들의 특징은 남녀 간의 공간 구분이 비교적 명확한 편으로 크게 여성생활 공간인 안채와 남성생활 공간인 사랑채로 나뉜다. 또한 지역마다 독특한 가옥구조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같은 한반도일지라도 지리적 환경에 따라 기후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옥의 구조면에서 볼 때 가옥은 크게 겹집과 홑집으로 나눌 수 있다.
겹집은 종도리를 중심으로 하여 전후 2열로 방을 배치하는 복렬형 가옥이며, 홑집은 종도리를 중심으로 1열로 방을 배치하는 방식의 단열형 가옥이다. 겹집은 동북부 지방의 추운 기후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실내로 햇볕이 들지 않아 실내가 어둡고 습기가 많은 편이다. 이에 반해 홑집은 햇볕이 잘 들어 실내가 밝고 통풍이 잘되지만 외부의 기온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안산의 경우 지리적으로는 중부지방에 속하는데, 중부지방의 경우 홑집과 겹집의 절충형 주거가 일반적이다. 대개 ‘口’자형으로 주거가 대각선으로 벌어지면서 튼 입구‘口’자형이다. 안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여름과 겨울이 길고 해안가와 인접해 있어, 겨울의 강한 바람과 바닷바람을 막을 수 있고, 여름의 더위를 견디기 위해 주거 공간이 분산된 ‘口’자형으로, 여기서 조금 변형되어 ‘ㄴ’과 ‘ㄱ’이 합쳐진 튼 ‘口’자형과 ‘ㄷ’자형이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형태는 대지 주변을 따라 대문채·안채 등이 연결되어 있다.
또 ‘장지’가 있고 마루방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방앗간과 축사가 따로 있지 않고 몸체와 일치한다. 부엌·안방·윗방 등이 중심이 되며, 마루방은 안방 또는 윗방에 붙어서 직각으로 구부러져 있다. 또한 사랑채는 대문채와 일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붕은 대부분짚으로 이엉을 엮어 만든다. 대개 2년마다 한 번씩 묶은 지붕을 걷고 새 지붕을 얹는다. 짚은 구입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 논이 있는 집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얻는 경우가 많다. 안산의 해안가 지역에서는 짚을 구할 수 없을 경우 갈대를 엮어 지붕을 얹기도 하였다. 이는 해안가 지역에서는 짚보다 갈대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갈대는 짚보다 가볍고 얇아서 장마철에 비가 새는 문제가 있어 보편적으로 이용되지는 않았다.
[전통적 상류가옥]
현재 안산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조선시대 상류가옥으로 청문당과 경성당을 들 수 있다.
1. 청문당
청문당은 진주유씨 16세손인 유시회(柳時會)[1562~1635]가 지은 것으로 당대 학자 및 예술가들의 교유에 중심적 구실을 하였던 곳이다. 청문당은 본래 ‘ㄷ’자형의 안채 및 사랑채 우측에 일자형의 아래채가 있는 튼 ‘口’자형이다. 사랑채와 아래채 사이에는 중문을 세우고 안채와 아래채는 샛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에 기와를 덮었다.
2. 경성당
경성당은 진주유씨 21세손이자 차종손인 유신[1748~1790]의 아들인 유중서(柳重序)[1779~1846]가 둘째 아들 유방(柳雨+滂)[1823~1887]이 분가할 때 지은 집이다. 안채는 약 200여 년 전에 지어지고 30년 뒤 사랑채를 지었다. 안채는 ‘ㄱ’자형이고 사랑채는 ‘ㅡ’자형이며, 사랑채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서쪽 끝에 한 칸의 누마루를 내어 지었다. 본래 누마루 뒤쪽에 작은 사랑과 마루가 있었으나, 생활공간을 늘리기 위해 마루를 반으로 줄이고 방을 늘렸다.
[현대의 가옥]
안산의 가옥은 새마을운동보다 신도시 개발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기 전까지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였고, 특히 농업 종사자들이 더 많아 농촌형 주거 형태를 띠었다. 가축이나 농기구를 보관할 부속건물이 있거나 가옥과 일체되어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새마을운동과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생업 수단인 농업이 산업으로 바뀌면서 농업과 관련되었던 공간이 사라지고, 다른 주거 공간들도 서양화되기 시작했다.
공업단지 건설과 함께 공업 인구가 늘면서 농지는 택지로 변경되고,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고잔동의 주공아파트를 시작으로 성포동·월피동·선부동·본오동 등지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으며, 현재에도 아파트 건설은 계속 진행되고 있어 주거 형태가 도시형으로 변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