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778 |
---|---|
한자 | 金文起 |
영어음역 | Gim Mungi |
이칭/별칭 | 여공,백천,마암,김효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우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여공(汝恭)이며, 호는 백촌(白村)·마암(馬巖). 처음 이름은 김효기(金孝起)였으나, 장인의 이름이 효정(孝貞)이어서 문기로 고쳤다. 영의정에 추증된 김관(金觀)이 아버지이고, 그의 아들 김현석(金玄錫)은 영월군수로 재직 중 아버지와 함께 순절하였다.
[활동사항]
김문기는 1399년(정종 1) 충청북도 옥천에서 출생하였다. 1426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부친상을 당해 3년상을 치렀다. 그 뒤 예문관검열·사간원좌헌납을 거쳐 함길도도진무(咸吉道都鎭撫)에 임명되었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겸지형조사(兼知刑曹事)·병조참의·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1455년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공조판서겸삼군도진무로 있으면서 은밀히 단종 복위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김질(金質)의 밀고로 계획이 발각되자 김문기를 비롯하여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응부(兪應孚) 등은 체포되었으며, 유성원(柳誠源)은 자결하였다. 김문기는 모진 고문에도 뜻을 굽히지 않다가 군기감 앞에서 능지처사(陵遲處死)를 당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백촌유사(白村遺事)』는 단종 복위운동에 참여했다가 죽음을 당한 김문기의 유사(遺事)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한편 『백촌선생문집(白村先生文集)』은 김문기의 시문집으로 1928년에 후손 김연석(金淵錫) 등이 간행하였다.
[묘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1동 185-2번지 사육신공원에 가묘가 설치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731년(영조 7) 김문기의 후손 김정구(金鼎九)의 청으로 복관(復官)되고, 1778년(정조 2)에는 충의(忠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791년(정조 15)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정할 때 민신(閔伸)·조극관(趙克寬)과 함께 3중신으로 선정되었다. 김천의 섬계서원(剡溪書院)과 사육신공원의 의절사(義絶祠) 등에 제향되었다.
또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58번지[오정각길 35]에 건립된 오정각(五旌閣)[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호]에는 김문기와 아들 김현석의 충신 정려, 김충주[김문기의 손자]·김경남[김문기의 증손]·김약전[김문기의 현손]의 효자 정려 등 5대에 걸친 충효 정려가 있다. 한편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사육신 문제에 대한 심의 끝에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