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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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후반 고구려(高句麗)의 남하(南下)로 인한 청주 주변의 상황. 청주를 둘러싼 삼국간의 항쟁은 427년 고구려(高句麗)의 평양(平壤) 천도(遷都)로부터 시작된다. 청주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백제는 4세기대의 전성기를 지나면서 남하하는 고구려의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고구려는 북쪽 이민족과의 항쟁에 주력하면서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고국원왕(故國原王)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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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를 중심으로 한 삼국간의 항쟁. 교통의 요충지인 청주를 빼앗기 위한 고구려, 백제, 신라간의 항쟁으로 청주지역을 최종적으로 획득한 신라는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427년(장수왕 15) 고구려의 평양 천도와 함께 남쪽으로의 진출을 강화하자,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체결하여 고구려를 방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으로 백제는 개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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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년(신문왕 5) 충청북도 청주 지방에 설치된 신라시대 5소경(五小京)의 하나 신라는 삼국통일 후 전국을 9주(州)와 5소경(小京)으로 재조직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밑에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官: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守), 현에는 현령(縣令)을 두었다. 또한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소경을 두었다. 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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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중요한 지역에 두었던 지방 특별 행정구역. 신라의 소경제 채용은 고구려의 3경제(三京制)의 설치와 운용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고, 그 직접적인 설치 계기는 6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일련의 체제정비와 수도의 도시계획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즉 지증왕(智證王, 500~514)대에 지방 행정조직인 주와 군제가 실시되고, 중앙과 변경지역에 이르는 관도와 우역이 정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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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던 시대의 문화. 한국의 철기문화는 중국 전국시대의 철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으며, 철기의 자체적인 생산은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여진다. 철기생산의 본격화 및 현지화, 제조기술의 발전은 다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토기의 출현, 생산력의 증대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이 가속화되어 국가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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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청주 신봉동 고분군은 옛 백제권역에서 발견된 가장 큰 규모의 유적으로 5세기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조영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당시 백제의 대외관계와 지방통치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어 사적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1982년 처음 고분군이 확인된 직후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의 가치를 주목받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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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屍身)을 묻기 위해 널길을 통해 무덤방[石室]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돌로 쌓아 만든 무덤. 돌방무덤이란 밀폐된 덧널(槨)이 아니라 출입이 가능한 돌로 만든 방(室)을 의미하며, 돌방무덤을 쓴 동기는 일회성 매장(埋葬)이 아닌 추가장(追加葬)을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추가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덤방을 만들고 생전에 실내를 출입하듯 무덤방을 드나들 수 있도록 무덤 한쪽 측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