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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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옛 청주읍성의 모습을 그린 채색지도. 청주읍성의 형상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로서 유이주공(公)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작성 시기에 대하여는 확실한 기록이나 근거는 없으며, 다만 1794년(정조 18)에 수원 화성(水原華城)의 축조를 위한 평지성의 사례조사 목적으로 「청주읍성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청주읍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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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년(영조 49)에 청주 표충사(表忠祠)에서 간행한 1권 1책의 목판인쇄본. 1728년(영조 4)에 이인좌(李麟佐) 등이 일으킨 반란(反亂: 일명 무신란(戊申亂)) 때, 청주에서 순직(殉職)한 3명의 충신(忠臣)인 충민(忠愍) 이봉상(李鳳祥)[1676~1728], 충장공(忠壯公) 남연년(南延年), 증참판(贈參判) 홍림(洪霖)[1685~1728]의 위패를 봉안한 표충사의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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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遊覽)하는 일. 관광은 인간이 일시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속으로 이동하는 행위를 통해 심신의 변화를 추구하고 다시 그 일상생활로 복귀할 것을 전제로 다른 지역의 제도, 풍습, 자연 등을 감상하며 배우고 견문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8세기 중국 고대 주나라때 편찬된 『역경(易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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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武臣)으로 무신란(戊申亂) 때 순절한 충신. 1728년 무신란 당시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반군(叛軍)의 회유를 물리치고 순절하여 충절로 이름났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수백(壽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남홍달(南弘達), 할아버지는 증사복시첨정(贈司僕寺僉正) 남유경(南有慶),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된 남두명(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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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에 소론(少論) 과격파들과 남인(南人)이 영조(英祖)와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은 노론(老論)이 지지하는 영조의 즉위로 위협을 느낀 소론의 과격파들과 남인이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증손(曾孫)인 밀풍군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이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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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지방도시로서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는 청주시에는 수많은 옛 건조물이 유적으로 현존하면서 역사문화도시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청주 정북동 토성과 청주 신봉동 고분군에서와 같이 옛 주거지 터가 현존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설축하였다고 하는 청주읍성터는 현재의 가로망 형태로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우암산성, 당산토성과 우암산성을 거쳐 저 멀리 산성동의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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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2가 서남단에서 상당구 우암동의 북쪽까지 연결되는 남북방향의 도로. 도로명은 예전에 청주읍성 북문 안에 있었던 삼충사(三忠祠)[또는 표충사(表忠祠)]에서 유래되었다. 삼충사는 북문 안에 있었는데, 1939년 군수 이해용(李海用)이 수동으로 이전하였다. 동쪽은 사직로에서 시작하여 북쪽은 흥덕로에서 끝난다. 폭은 10m이며, 길이는 1420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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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삼충사의 사적비. 1731년(영조 7) 표충사(表忠祠)의 건립관련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다. 상당구 수동의 표충사(表忠祠) 내 표충사(表忠祠) 본전(本殿) 오른쪽에 있다. 방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246㎝, 폭 95㎝, 두께 38㎝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加檐石)]을 얹었다. 전서(篆書)로 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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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청주군 북주내면(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청주향교의 서쪽에 있어서 교서(校西)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원리(院里) 일부와 동주내면(東州內面)의 교동리(校洞里) 일부를 묶어 교서리(校西里)라 명명하고 이를 청주면에 편입하였다. 1920년 교서리를 일본식 지명인 수정(壽町)으로 바꾸고 광복 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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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기허당(騎虛堂)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수도할 때 선장(禪杖: 승려의 지팡이)으로 무예를 익혔는데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출중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규대사(靈圭大師)[?~1592]는 승려들의 창의(倡義)를 독려하였지만 따르지 않았다. 영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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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 산재한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 성리학이 수용된 고려 말 이후 현재까지의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을 통해 호서 사림의 역사적 배경과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과 인적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지배층인 양반의 제례(祭禮)와 강학(講學)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은 단순한 문화유산에 그치는 것이 아닌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지역에 분포하는 유교 유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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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세 충신을 모시는 사당. 조선 영조 때의 충신인 이봉상(李鳳祥)[1676~1728], 남연년(南延年)[1653~1728], 홍림(洪霖)[1685~1728]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삼충사(三忠祠)라고도 부른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켜 청주성으로 침입하자 당시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있던 이봉상을 비롯하여 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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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의 북쪽 문이 있던 자리. 상당구 북문로 1가와 2가의 경계에 있는 청주읍성의 북문터로 현무문(玄武門)이라고 하였으며, 홍예문과 문루, 옹성을 갖추고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모두 헐렸고 북문 안쪽에 있던 표충사(表忠祠)는 수동으로 옮겨졌다. 1921년 북문 밖으로는 충북선 철로가 놓여졌었고, 지금은 청주의 중심로가 되었다. 1994년에 청주 문화사랑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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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표충사(表忠祠)의 이건 내력을 기록한 비석. 1731년(영조 7)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 안에 표충사(表忠祠)를 1939년 도시계획에 밀려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그와 관련된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상당구 수동 표충사(表忠祠) 안 내삼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쪽 바깥 정원에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30㎝,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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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때 충청병영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초명은 진(震), 자는 춘경(春卿)이다. 첨절제사 홍수명(洪受命)의 아들이다. 충청병마절도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에 의하여 청백함이 인정되어 1727년(영조 3) 막료가 되었다. 이인좌의 난으로 1728년 청주읍성이 함락되고 이봉상이 잡힌 다음 죽음을 당하자, 그는 자신이 절도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