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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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강강수월래,우광광술래,뜀뛰기 |
분야 | 생활·민속/민속,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이윤선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해 영산강, 서남 해안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전승해 오는 민속놀이.
[개설]
강강술래 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전승·발전해 온 놀이 겸 노래를 말한다. 인근 전라남도 진도, 해남 지역에 전승되던 강강술래가 1966년 2월 15일 국가 무형 문화재 제8호로 지정됨에 따라 강강술래의 중심이 진도, 해남 쪽으로 급속하게 쏠리게 되었다.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영암군에서 마을마다 행해지던 강강술래는 점점 약화되었다. 2012년 현재 ‘영암 삼호 강강술래단’이 영암군을 대표하는 놀이 집단으로 남아 있다.
강강술래 는 지역에 따라서 강강수월래, 우광광술래, 뜀뛰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원]
강강술래 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이 창안했다는 이야기, 삼한 시대에 전래되었다는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고대에서 전습되어 온 놀이를 활용하여 임진왜란 때 노적봉을 위장시켜 왜군을 물리쳤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강술래의 어원을 강강수월래(强姜水越來)[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오니 경계하라는 뜻으로 해석]에서 찾는 것은 후대의 문장가들이 지은 것이다.
[놀이 방법]
영암군에서도 진도, 해남 못지않게 젊은 여자들, 특히 아가씨들이 강강술래를 추었다고 한다.
넓은 의미의 강강술래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놀이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좁은 의미의 강강술래는 ‘진강강’에서 ‘자진강강’까지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춤과 노래를 말한다. 강강술래는 빠르기에 따라 긴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잦은강강술래 및 부대 놀이로 구성된다.
부대 놀이는 흔히 여흥 놀이라고도 하는데, 실상 강강술래의 일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영암군의 여흥 놀이도 진도, 해남과 비슷하다. 개고리 타령,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꺾자, 쥔쥐새끼놀이, 청어 엮고 풀기, 기와밟기, 덕석몰이, 꼬리따기, 문지기 놀이, 가마등, 수건 놓기, 외따먹기 등이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한가위 보름날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젊은 아낙네와 처녀들이 새 옷으로 단장하고, 손과 손을 마주 잡고 원무하기도 하고, 여러 놀이를 번갈아 가면서 밤이 지새도록 노는 모습은 전라남도 영암군 특유의 멋과 풍류의 승화라 할 수 있다.
강강술래 는 달 밝은 한가위와 대보름 날에 세시 풍속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으며, 민간 신앙적 요소와 의의가 깃들어 있다. 정월 대보름의 의미는 기풍(祈豐), 점풍(占風), 도액(度厄), 민, 태평으로 집약할 수가 있다. 한가위는 햇곡식으로 조상에게 다례를 지냄과 아울러 수확을 감사하는 일종의 농경의례라고 볼 수 있다. 농경의례에 여성이 중심이 되고 둥글게 춤추는 것은 만월을 모방한 일종의 주술 행위라 할 수 있다.
강강술래 는 주로 한가위에 전라남도 도서 해안 지역에서 매우 흔하게 행하던 민속놀이이다. 형태적으로는 여성들의 집단 가무이지만, 기능적으로는 풍년이 들게 해 준 자연신에 대한 강렬한 감사의 기도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집단 가무 중에서 여성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춤과 놀이인 강강술래는 지금까지 수많은 가사들이 채록되어 지난날 여성들의 삶의 애환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 마을에서도 자연스럽게 노는 모습을 볼 수 없다.
[현황]
영암군은 영산강의 중심권에 있어 강강술래 놀이가 마을 혹은 권역마다 전승·발달해 온 곳이다. 영산강을 중심으로 도서 해안 지역과 밀접한 교류를 했기 때문에 그 성격 또한 연근해 도서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진도와 영암 무속이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강강술래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는 영암 삼호 강강술래가 보존·전승되고 있을 뿐, 동호인들 이외의 강강술래단이 따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