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1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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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村空間再生事業-, 參禮飛飛亭-文化藝術村 |
영어공식명칭 | The Centerpiece of Urban Space Renovation Project, Samrye Bibijeong Village and Arts Village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규남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의 농촌 공간 재생 사업의 꽃, 삼례 비비정마을과 삼례 문화예술촌.
[삼삼예예미미, 비비정마을과 문화예술촌]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과 삼례문화예술촌 삼삼예예미미는 농촌 공간 재생 사업의 성공 사례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의 양곡창고들은 2013년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국가등록문화재 제580호]으로 등록되었으며 2016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역 문화브랜드 대상으로 선정된 바 있다. 비비정마을 역시 마을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자본주의와 개인화로 해체된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 실험 무대가 되고 있다. 비비정마을 서편 언덕에는 비비정과 호산서원이 있고 그 옆으로 지나는 구 전라선 철도 위에는 일제강점기 근대의 상징이며 동시에 수탈의 역사가 펼쳐진다. 그리고 만경강과 철도의 평범하지 않은 환경을 자원으로 삼은, 레스토랑, 커피숍, 선물 가게 등 민간자본이 투자되면서 지역문화 자원을 활용한 문화산업의 또 다른 실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주도의 농촌 공간 재생사업이 진행되기 전까지 삼례예술촌 일대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되고 철도운송에서 육로운송으로 유통 방식이 바뀜에 따라 본래 쌀 창고와 유통 중심의 기능을 잃고 거의 버려진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비비정마을 역시 비슷하다. 비비정마을은 본래 만경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동네로 삼례에서도 특히 빈한한 마을 중 하나였다. 이 두 곳의 화려한 변모는 자본주의 체제에 소외된 여러 지역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여러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하러 오기도 한다.
[근대의 유입과 농촌 도시로의 성장]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과 문화예술촌은 나이테를 따라 고갱이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흥미로운 역사를 만나게 된다. 한국사회가 변모되어 온 역사와 각각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이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친 숨소리가 배어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근대 이전의 삼례는 교통의 요지였다. 물길로는 전주천, 소양천, 고산천이 합수하여 본격적으로 만경강이 시작되는 곳이며 육로로는 호남대로와 영남대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삼례역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현종이 거란의 난을 피해 1011년 1월 8일 삼례에 머문 일이다. 백제시대에 삼례는 우소저현에 속했는데 만경강의 지류인 탑천 상류에 우소저현의 창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창리(倉里)가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 당시에는 창리에서 만경강을 거쳐 조운(漕運)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 한내에 둑이 쌓이기 전까지는 이곳 비비정마을 앞에 소금배가 드나들었다. 그것이 전주 8경의 하나인 동포귀범(東浦歸帆)이다.
비봉 천호성지의 천호산은 갈매봉을 거쳐 남동 간으로 뻗어내리다가 탑제를 기점으로 동남간으로는 봉실산으로 우뚝 솟아 봉상과 우동 평야 지대를 거느리고, 남서 간으로 길게 뻗은 산자락은 탑천과 왕궁천을 양쪽으로 거느리고 통정, 구암, 학동을 거쳐 삼례에 이른다. 이 능선이 조선시대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이며 지금 삼례나들목도 바로 그 구릉 지대에 있다. 이 구릉은 삼례나들목에서 화산봉, 우석대학교, 삼례초등학교, 금반, 비비정으로 이어진다. 비비정(飛飛亭)은 고산천, 전주천, 소양천이 합수되어 만경강을 형성하여 서해로 나아가는 광활한 봉동, 삼례, 전주, 익산의 평야 지대가 한눈에 굽어 보이는 요지에 세워져 있다. 비비정은 선조 6년(1573년) 무인 최영길이 세운 것으로 전한다. 비비정 일대에 백제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이미 오래전부터 군사 요충지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비비낙안(飛飛落雁)은 만경강 강물 위 기러기 떼의 비상을 노래한 전주 8경의 하나이다. 비비정과 관련해서는 우암 송시열의 ‘비비정기’, 관찰사 서명구의 ‘비비정 중수기’, 간재 전우의 ‘비비정 이건기’와 완주군수 임명환의 ‘비비정 복원기’와 더불어 관찰사 조세환, 이사명, 판교 홍남립, 서귀 이기발 등의 시가 남아 있다. 비비정 가까이에는 정몽주, 송시열, 김수항, 김동준, 정숙주의 위패가 봉안된 호산서원(湖山書院)이 있다. 지금의 비비정은 삼례 출신 교육자이며 시인 김응혁이 발기하고 지역 유지 송공준, 박창호, 이민교, 허진석 등이 힘을 실어 1998년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군비를 들여 건립한 것이다. 삼례예술촌, 삼례 후정리 삼례역 일대는 조선시대까지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 주민이 유입되고 삼례의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하는 데는, 1900년대 초반 일본의 대자본가들이 동산촌, 대장촌, 이리, 황등, 임피, 옥구 등지에서 대농장을 경영하면서 수리조합, 철도회사 등과 연계하여 근대적 농업기반과 유통망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삼례는 조선시대까지 전라도의 대표적 역참 지역이었다. 지금의 삼례 동부교회 근방이 삼례의 중심지로 웃사거리에서 동부교회를 거쳐 웃삼례 가인리까지가 삼례장과 역참의 중심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삼례면이 형성되면서 삼례는 삼례역참 일대 전주군 오백조면 지역과 해전, 어전 등 전주군 부북면 일대를 통합하였다. 후정리와 비비정 사이 구릉에 박기순·백남신 농장과 이엽사 농장이 들어서고 전주-익산 경편철도가 개설되면서 삼례역이 생겼다. 삼례역 개설 이후 삼례역세권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삼례의 중심이 삼례역참에서 삼례역 쪽으로 옮아가게 되었다. 삼례역참과 삼례역 사이 서신리(西新里) 역시 삼례역세권의 발달로 말미암아 삼례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발달한 지역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대장촌에서 삼례로 들어오는 철로의 경사각이다. 이곳은 한국 철도의 평균속도가 떨어지는 대표지점으로 지목될 정도였다. 이 비정상적인 철로 경사각은, 막사발박물관[현재 폐관]이 있는 구 삼례역사에서 10시 방향으로 비스듬히 난 길, 박기순 농장 터에 그 비밀이 숨어있다. 박기순은 당시 전북경편철도 기성회 회장으로 아들 익산군수 박영철, 전주면장 이성규와 더불어 역세권 개발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무리한 경사각을 감수하고 삼례역이 그 자리에 놓이게 된 것은 박기순 농장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삼례역 주변을 중심으로 한 삼례의 성장은 수로, 철도, 도로 개설 및 도정공장 및 각종 근대적 시설물의 유입에서 확인된다. 대표적인 수로 공사는 독주항과 비비정 수로 공사이다. 독주항은 18세기 궁방(宮房)이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고 지방민의 노동력을 동원하여 만들어진 총연장 20㎞에 달하는 대규모 관개시설이었다. 독주항은 죽동궁(竹洞宮) 민영익이 관리하였는데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민영익이 상해로 망명한 후 1910년 11월 27일 민영익의 대리인 고제현(高濟賢)으로부터 전익수리조합이 매입하게 된다. 당시 전익수리조합에 관계한 인물은 흑전이평(黑田二平), 하산시언(下山時彦), 백남신(白南信), 아도대길(兒島大吉), 박기순(朴基順), 금촌일차랑(今村一次郞), 김윤보(金允甫), 전판좌삼랑(田坂佐三郞) 등이었다. 1909년 12월 14일 자 대한제국탁지부대신 인가로 창립된 임익수리조합은, 만경강 본류의 물을 취수하여 비비정 아래 바위를 뚫고 비비정수로를 개설한다. 임익수리조합은 취입구 공사로 피해를 입은 창덕면 안좌리(安座里) 33호, 신안리(新安里) 10호, 하백도리(河白道里) 21호의 이거료 896원을 지급하고 1922년 4월 21일 만경강 삼례 취입구 이하 수로 공사를 완공하였다.
한편 전북경편철도회사는 1914년 11월 17일 전주~이리 간 25.3㎞ 협궤철도 영업을 개시한다. 이 철도는 전주, 동산, 삼례, 대장, 구이리, 이리를 잇는 철도로 동산촌의 동산농장(東山農場), 삼례의 박기순·백남신 농장, 춘포의 대장촌 농장 등 일본인·친일파 대지주의 농장 유통 경로다. 이 철도는 조선총독부의 ‘조선국유철도 12년 계획’에 의거 철도국이 매수하여 1927년 10월 20일부터 1929년 9월 20일까지 광궤 철도로 개축, 1930년 1월 11일부터 경전북부선(慶全北部線) 영업을 시작하였다. 경전북부선은 1931년 10월 전주-남원, 1933년 10월 남원-곡성, 1936년 12월 16일 곡성-순천 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전라선으로 변경된다.
조선시대 삼례는 제주와 목포, 통영과 순천을 거쳐 한양에 이르는 길목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05년 기존의 도로를 전반적으로 개수할 계획을 수립하여 1907년부터 주요 노선을 개수하게 되는데 삼례를 통과하는 경성~목포 간 도로는 1917년~1923년에 완공되었다. 이때 삼례~고산 간 도로로 시공되었다. 이에 따라 삼례역 주변은 농장, 미곡검사소, 정미소, 창고 등 쌀 생산 및 가공·유통에 관한 각종 시설이 들어서게 되고 그와 더불어 1914년 삼례면이 설립되면서 면사무소, 우편소, 금융조합, 경찰관주재소, 학교 등 근대 농촌 도시로서의 기반을 갖추게 된다. 지금의 삼례 서신리(西新里)는 삼례역 주변의 개발로 말미암아 삼례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그곳에 주민들이 유입되면서 생긴 행정구역이다.
[비비정마을과 삼례예술촌에 내려앉은 기러기들]
1970년 중반 이후 가속된 산업사회로의 전환은 농촌의 몰락을 가져왔다. 1980년대 이후 고속도로의 준공과 자동차 산업의 발달은 철도에서 도로로 유통 구조의 변화를 가져왔다. 새마을운동과 식량 자급자족 기치의 영향으로 1970년 중반까지만 해도 삼례역은 전라북도 완주군 미곡 총생산량의 절반 이상의 유통 중심이었다. 당시 삼례는 영풍공장, 황공장, 윤공장 등 대규모 도정공장과 마을마다 방앗간이 있을 정도로 쌀 생산과 가공 및 유통이 활발한 고장이었다. 191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삼례역 미곡창고는 인근 지역의 가공미 일체를 보관하고 유통하는 역동적 공간이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에 따른 이촌 향도의 영향과 1980년대 이후 자동차 산업의 발달로 말미암아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한 유통 구조의 변화는 삼례의 상대적 쇠락을 가져왔다. 1990년대 후반 현대자동차 전주공장과 더불어, 조선맥주, 고려화학, 대림산업, 미원 등 국내 굴지 기업을 유치한 봉동은 완주 제1읍치로 성장했지만, 삼례는, 전주와 익산의 주변부로 몰락하면서 이렇다 할 변모를 시도하지 못한 채 정체의 길을 걷는다.
삼례 제1읍치였던 삼례의 경제, 사회, 문화적 위세의 약화는 지자체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비비정마을과 삼례문화예술촌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지자체마다 문화관광산업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비비정마을은 2009년 농림식품수산부 완주군 신문화공간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희망제작소의 소영식 연구원이 그 마을에 거주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문화기획자 소영식은 어머니들이 텃밭을 일구고 음식을 만드는 일상에 착안하여 요리법을 만들어 전시하고 지역축제 부스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마을신문을 만들어 마을 부녀자들의 음식 솜씨와 마을 이야기 공동체 비즈니스를 상품화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한 지방 언론 매체의 관심은 미온적 태도를 보인 주민들을 변화시켰고 사업 첫해 부녀회 중심의 수익사업에서 천만 원의 수익을 냈다. 이듬해 SK텔레콤 ‘써니 자원봉사단 여름 캠프’에 청소년 100여 명이 참가하여 마을과 주민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에서 청소년들이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와 연극으로 만들어 발표하였고 텃밭마다 이름을 붙이고 마을을 광고하는 창의적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후 비비정마을에는 농가 레스토랑, 카페테리아, 전망대, 야외공연장 등 문화시설이 들어섰다. 2018년 현재 전라선 복선 공사로 2011년 10월 만경강 철교 폐쇄로 폐철교가 된 전라선 철로 위에 완주군에서 열차 4량을 구입하여 ‘비비정예술열차’가 위탁 경영되고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은 전 완주군수 임정엽의 공약 사업으로 추진되어 협동조합 ‘삼삼예예미미’의 형태로 2013년 6월 5일에 개장되었다. 삼삼예예미미의 구성원들은 외지에서 영입된 예술가, 문화사업가들이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만경강 일대 양곡 수탈의 역사를 가진 폐 양곡창고를 미디어아트미술관, 카페, 책 박물관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구성, 개장 이듬해 3만여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곳은 2017년까지 국내외 기업 제품 디자인 가운데 우수 디자인으로 수상한 작품을 전시하고 디자인의 효과와 전망을 소개하는 공간 비주얼 미디어 아트 VM아트갤러리, 목수의 일상 작업의 흔적과 가구 제작을 체험하는 동시에 음악, 문학, 미술이 함께 하는 예술 복합 공간 김상림목공소, 1983년 이래 한국책 디자인의 변천 과정과 시대상을 반영한 초등학교 교재, 송광용의 40년 만화 일기 등을 전시한 책 박물관, 납 활자 주조기 활판 인쇄 활자, 판화 프레스, 인쇄 교정기 등 인쇄 기계의 변천 과정을 전시한 책공방 북아트센터 그리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음료와 다과를 즐길 수 있는 문화카페 등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협동조합의 형태이기는 했으나 주로 각자의 사업장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방법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2016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브랜드 대상에 선정되었고 2017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는 성과를 거둔다. 같은 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열린 관광지 조성 지원 사업 6곳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자본주의와 문화산업의 학습림]
비비낙안(飛飛落雁), 비비정과 삼례문화예술촌에 기러기들이 내려앉았다. 그들의 화려한 날갯짓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방식에서는 두 곳이 상당한 차이가 있다. 비비정마을은 희망제작소의 한 연구원이 주도하여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사업의 주체가 마을 주민이 되도록 유도하였다. 비비정마을은 이른바 ‘건달 할머니들’이 중심이 되어 비비정 레스토랑, 카페 등을 운영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비비정 너머 구삼례철교 위로 예술 열차를 끌어와 비비정마을 권역에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 쉴 장소를 확보했다. 그러나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과 그렇지 않은 주민들 사이의 틈을 어떻게 좁혀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사업을 지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은 전라북도 완주군이 외부의 예술가와 문화사업가를 영입하여 시작된 사업이다. 사업의 주체는 외지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의욕적이고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수준 높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지속적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이 사업에서 지역주민은 구경꾼에 불과했고 문화예술의 내용 역시 지역의 정체성과 거리가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은 그동안 이곳의 운영을 맡았던 협동조합 삼삼예예미미의 운영, 특히 2013년 8월에 조합에 합류한 막사발미술관의 부실운영과 폐관을 이유로 2018년부터 새로운 민간위탁기관 아트네트웍스(주)[대표 심정순 외]가 선정되었으며, 우석대학교, 완주문화재단 등과 협정을 맺어 문화예술 교류를 시도할 예정이다.
삼례예술촌과 비비정마을 인근의 문화산업 지역은 이제 완주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가족, 연인, 친구, 수학여행단 등의 관람객이 삼례예술촌을 찾아 전시물을 관람하고 비비정레스토랑 건달 할머니들의 무조미료 ‘집밥’ 식사를 즐기고, 만경강 철교 위 낯선 그러나 뜻밖의 전망을 즐기는 벨트형 연계 관광의 즐거움은 분명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문화예술관광 자원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