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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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雲里遺蹟 |
영어공식명칭 | Historic Site Related to Sangun-ri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유철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6월 4일~9월 30일 - 상운리 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 군산대학교박물관 시굴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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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8월 25일~2006년 11월 2일 - 상운리 유적 전북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실시 |
현 소재지 | 상운리 유적 - 완주IC 주변 유적 조성지 |
원소재지 | 상운리 유적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산8 |
성격 | 유적 |
양식 | 분묘유적|생활유적 |
면적 | 조사면적 48,400㎡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적.
[개설]
상운리 유적에서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집자리, 무덤 등 옛사람이 남긴 삶의 흔적]와 유물이 발굴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로 분묘유구[고인돌 1기, 돌널무덤 1기, 돌뚜껑움무덤 1기, 독무덤 3기]와 생활유구[주거지 9기], 초기 철기시대 유구로 생활유구[주거지 4기, 구상유구 2기, 수혈[구멍] 3기], 원삼국~삼국시대 유구로 분묘유구[분구묘 30기, 나무널무덤 35기, 독무덤 5기, 기와널무덤 1기, 돌덧널무덤 4기, 석실분 1기, 주구 3기]와 생활유구[주거지 14기, 수혈 12기, 고상식건물지 1기, 기와터 1기], 고려~조선시대 유구로 널무덤 84기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 옥류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매우 다양한 기종과 형태를 보이는데 호형토기, 컵형토기, 유공소호, 병형토기, 발형토기, 장군병, 굽다리접시 등이다. 철기류는 무기, 농공구, 마구류 등으로 나뉘는데 무기로는 환두도, 철모, 철창, 철촉 등이며 농공구는 철부[쇠도끼], 철겸[쇠낫], 단야구[금속제품을 만드는 일련의 작업공정에 사용되는 연장] 등이 출토되었고 마구는 재갈을 비롯한 마구 부속품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옥류로는 곡옥, 관옥, 토제옥, 유리옥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상운리 유적은 일정 지역에서 청동기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덤과 생활양식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현재까지 발굴조사된 마한계 분묘 중에서 최대 규모를 나타내며 많으면서도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드러났다.
[건립 경위]
상운리 유적은 전주-함양 간 고속도로 건설에 따라 1996년 도로구간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했고 2002년 6월 4일~9월 30일까지 시굴조사를 실시했으며 이를 토대로 2003년 8월 25일~2006년 11월 2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발굴조사를 통해 분구묘[분구를 먼저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를 비롯한 많은 유구와 유물이 조사됨에 따라 2006년 11월 1일 보존 및 정비방안을 마련하도록 의견이 제시되었으며, 이에 당시 발굴조사지역 가, 나, 다, 라 지구 중에서 라 지구의 분구묘와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고인돌, 원삼국시대 나무널무덤을 2007년 12월까지 정비와 이전 복원을 실시했다.
[위치]
상운리 유적은 익산-포항고속도로 구간 완주IC 부근에 조성되어 있다.
[형태]
상운리 유적의 분구묘는 분구의 성토층을 복토하고 잔디를 식재했으며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원삼국시대 나무덧널무덤은 유구를 복토한 후 회양목을 식재해서 유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주거지 옆으로 이전 복원했다.
[현황]
상운리 유적은 호남정맥과 호남평야가 만나는 경계부에 자리하는데 남쪽으로는 소양천이 자리하며 유적의 서북편에서 고산천과 합류해 만경강으로 흐른다. 상운리 유적은 북서~남동으로 형성된 해발 49.7m의 나지막한 구릉에 있다. 구릉의 북사면과 동사면은 비교적 급한 경사를 이루었지만 남사면과 서사면은 완만한 지형을 하고 있다. 상운리 유적은 가,나,다,라 등 4지구로 분류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했는데 유구의 밀집도가 매우 높으며 다양하고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4개의 지구 중 라 지구를 대상으로 청동기시대 주거지, 원삼국시대 분구묘와 나무널무덤 등은 유구를 복토해 잔디 식재 및 회양목을 식재했으며 고인돌은 주거지 옆으로 이전 복원했다.
[의의와 평가]
상운리 유적은 많은 수의 분묘와 생활유구 및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를 통해 마한계 사회의 장법(葬法)을 비롯한 정치, 경제, 사회, 기술 등 전반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자료가 제공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