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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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巨里場 |
영어공식명칭 | Samgeorijang |
이칭/별칭 | 방축장시,광석장시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유선영 |
[정의]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에 있던 옛 시장.
[개설]
시흥시 능곡동[능곡동·화정동], 연성동[하중동·하상동·광석동·장현동], 장곡동, 군자동[군자동·거모동], 월곶동 일대의 주민들이 이용하던 옛 시장으로 축산물의 거래가 많았다. 능곡 삼거리마을[지금의 능곡동 삼거리] 옛 정미소 자리 주변 장터는 장의 중심지로 특별히 '장마당'이라 불렀다.
[건립 경위]
삼거리장(三巨里場)의 유래는 물자 유통 방법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조선 후기 물자의 유통은 육로보다는 해안가를 따라 이루어져 해안가를 중심으로 장시(場市)가 발달하였다. 경기도 시흥 지역의 장터 역시 처음에는 해안가에 발달하였다. 그러나 점차 도로 교통의 여건이 향상되면서 내륙인 서남부 지역에 새로이 상권이 형성되면서 삼거리장이 개설되었다.
[변천]
삼거리장이 개설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924년 조선총독부 서무부 조사과에서 발간한 『조선의 시장(朝鮮の市場)』 기록에 따르면 1920년대 이미 장이 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 방축장시(防築場市)[광석장시(廣石場市)]로 불리다가 1920년대에 3일·8일 개장으로 개시하였고, 1938년에 박경선(朴敬善)과 정인섭(鄭寅燮)이 우시장 터를 기부하여 5일·10일에 개장하는 우시장으로 개시하였다.
삼거리장의 거래 품목은 대부분 축산물로 약 1,252만 원가량이 거래되는 큰 시장이었다. 그러나 삼거리장 인근에서는 여전히 상권이 큰 뱀내장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다 1950년대에 도일시장과 안산시장이 개시하면서 상권이 쇠약해졌고, 도일시장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폐시하였다.
폐시 이후 능곡동 주민들은 삼거리장을 다시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을 주민들이 추렴을 통해 시장 건립 자급을 마련하여 1956년 재개시하였다. 인근의 안산시장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원래 개장일이었던 5일·10일이 아닌 2일·7일에 개장하였다. 또한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백중 씨름대회를 개최하여 송아지를 상금으로 주는 등의 노력을 하였으나 1970년대 전반에 폐시되었다.
[구성]
삼거리장에는 우시장 중개인과 달리 장의 중개를 책임지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삼거리장의 중개를 책임지는 사람은 권억이었다. 삼거리장에는 술집과 잡화를 파는 상설 점포가 있었으며, 장날에는 봇짐장수들이 좌판을 벌였다. 다만 삼거리장에는 마방이 없었고, 삼거리마을 칼국수집 옆에 양조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