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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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綠里-明堂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집필자 | 박종익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8년 -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에서 김주영[남, 72]으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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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서산 초록리』에 수록 |
성격 | 전설|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고수관|김씨|지관 |
모티프 유형 | 명당 파손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에서 배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2010년 충남대학교 마을연구단이 집필하고 민속원에서 간행한 『서산 초록리』의 141~142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박종익이 2008년 9월 6일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김주영[남, 72]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에는 중고제 명창 고수관(高壽寬)이 살던 집이 있다. 구전에 따르면 이 고수관의 집 또는 그 옆집의 터가 배형[船形]이라고 한다. 배형의 자리는 그 배에 가득 실을 만큼의 재물이 모이는 자리로 좋은 터 중의 하나라고 한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에 이 자리에 살던 김씨 성의 인물은 쇠솥을 만들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장사가 잘 되어 젖은 돈을 멍석에 말리고 갈퀴로 뒤적일 만큼 그의 집에 재물이 많이 쌓였다. 이처럼 장사가 잘되고 가세가 일어나자 그는 집을 늘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지관이 그에게, “늘리지 마라. 늘리면 안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지관의 말을 듣지 않고 집을 늘렸다. 이처럼 집을 늘리고 나서 이삼 년이 지나지 않아 그의 가세가 점점 기울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끝내는 아들 죽고 손자 죽고 할아버지가 죽는 등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두 가지로 풀이를 한다. 하나는 원래의 배 모양을 고쳐 배가 제대로 운행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배는 규모에 따라 일정한 정도의 재물을 실을 수 있는데 규모 이상의 재물을 실다 보니 배가 물에 가라앉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배 명당은 재물이 많이 쌓이면 자선을 베풀거나 재물을 가지고 이사를 가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모티프 분석]
「초록리의 배 명당」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파손이다. 개개 명당에는 으레 명칭이나 속성에 따른 금기가 존재한다. 배 명당의 경우는 배의 크기에 따라 선적할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다. 이를테면 정해진 규모 이상의 짐을 실으면 반드시 배는 침몰한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김씨의 몰락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