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7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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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金氏 |
이칭/별칭 | 한다리 김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
집필자 | 홍제연 |
본관 | 경주 - 경상북도 경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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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서산 - 충청남도 서산 |
세거|집성지 | 서산 대교리[한다리]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한다리마을 |
묘소|세장지 | 서산 대교리[한다리]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한다리마을 |
성씨 시조 | 김알지 |
입향 시조 | 김연 |
[정의]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연(金堧)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개설]
경주 김씨는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500년대 중반에 입향 한 이후 서산 지역에서의 향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였고, 단구자김적이나 학주김홍욱 등 다수의 인물이 중앙 관료로 진출하였다. 특히 이곳 출신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가 정국을 주도하던 시기에는 강력한 세력을 갖게 되었다.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의 경주 김씨는 ‘한다리 김씨’로 칭해지며 서산의 손꼽히는 유력 성씨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연원]
경주 김씨는 김알지를 시조로 하며, 그 역사가 깊은 만큼 수많은 후손들이 분파하였다.
경주(慶州)는 현재 경상북도 남동부의 경주시로 신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경주 김씨는 김알지를 시조로 한다. 김알지의 7세손 미추왕(味鄒王)이 왕위에 오른 후 마지막 경순왕까지 38명의 왕을 배출하였고, 그 역사가 깊은 만큼 수많은 후손들이 분파하였다.
[입향 경위]
안동에 세거하던 경주 김씨는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이 명종[1545~1567] 때에 만년 은거지로 서산을 택하였고, 그의 큰 아들인 김호윤(金好尹)이 서산에 터를 잡으면서 자손이 대대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서산의 사찬읍지 『호산록(湖山錄)』[1619]에는 김연의 아들이자 김호윤의 동생인 김호열(金好說)[1534~?]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매우 자세하다. 김호열은 156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임진왜란 중 서산의 사족들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하였다. 『호산록』이 편찬된 이후 조선 후기까지 경주 김씨 문중은 서산의 대표적인 유력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김호윤의 아들 김적(金積)이 송곡사에, 김적의 아들인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 성암서원에 배향되고, 정려나 신도비의 건립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등 17세기 이후 크게 번성하였다, 김한구(金漢耉)[1723~1769]의 딸 정순왕후는 정국 운영을 주도한 왕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관련 유적]
송곡서원과 성암서원에 관련 인물이 배향되어 있으며,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는 김기현 가옥과 정순왕후 생가가 전통 고택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