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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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殺害- |
영어공식명칭 | Salhaejae |
이칭/별칭 | 사라치(紗羅峙),위치(位峙),사래재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
집필자 | 김창환 |
해당 지역 소재지 | 살해재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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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개 |
높이 | 90m |
[정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에서 강원도 삼척시 원덕면 궁촌리로 가는 중간에 있는 고개.
[개설]
살해재[殺害峙]는 해발고도 90m로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와 강원도 삼척시 원덕면 궁촌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대왕산[186.5m, 옛 이름 고돌산] 북쪽 기슭의 구 7번국도 상에 있다.
[명칭 유래]
살해재의 명칭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두 왕자와 추종자 500여 명과 함께 이성계가 보낸 금부도사에 의해 살해된 장소라 하여 붙여졌다.
[자연환경]
살해재의 기반암은 시대 미상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왕산[186.5m] 북쪽에 위치한다. 살해재를 불교계에서는 사라치(紗羅峙)라고 불렀고, 고려의 종지부를 찍은 곳이라 해서 사가들은 위치(位峙)라 기록하기도 하였다.
[현황]
살해재는 해파랑길 50코스 중 공양왕릉 입구에서 덕산해변 입구까지인 31코스 출발점에 해당된다. 해파랑길의 안내표지판에는 살해재를 ‘사래재’로 표기하고 있다. 4차선으로 확장된 7번국도 또한 살해골과 대왕골 사이에 있는 살해재를 통과한다.
공양왕은 왕비와 세자, 시녀들과 함께 강원도 원주로 유배되었다가 나중에 강원도 간성으로 옮겨지면서 공양군(恭讓君)으로 봉해졌다. 그리고 3년이 지난 1394년(태조 3)에 강원도 삼척으로 다시 유배지를 옮긴 지 한 달 만인 4월 17일에 공양왕은 반역을 꾀한다는 누명을 쓰고 왕자 석(奭), 우(瑀)와 교살당하였다. 살해재에서 죽임을 당한 이들은 인근 동산에 안장되는데,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면 궁촌리공양왕릉이라고 한다. 공양왕릉은 봉분이 모두 4개인데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릉, 2개는 두 왕자, 나머지 하나는 시녀 또는 말의 무덤이라 전해진다. 오랜 세월이 흘러 공양왕릉이 퇴락하자 1837년(현종 3) 가을에 강원도 삼척부사 이규헌(李圭憲)이 개축하였고, 1942년 3월 20일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장 김기덕(金基悳)과 지역의 인사들이 다시 개축하였다. 최근에는 1977년 6월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장 최문갑(崔文甲)이 허물어진 봉분을 다시 쌓았다. 『태조실록』과 『양촌집(陽村集) 』 등을 통해 1395년(태조 4)에 고려 왕조의 왕씨들을 위해 강원도 삼척과 강원도 강화, 경상북도 거제 등지에서 수륙재(水陸齋)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서는 3년마다 어룡제(漁龍祭)를 지내는데, 제를 지내기 전에 반드시 공양왕릉에서 먼저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음력 4월 17일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주관으로 매년 제향을 올린다.
그러나 공양왕릉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외에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도 있다. 『세종실록』에 ‘안성군 청룡에 봉안했던 공양왕의 진영을 고양군 무덤 곁에 있는 암자로 옮기라고 명령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문화재청에서 공식 인정했고, 1970년 사적 제191호로 지정했다. 반면에 강원도 삼척의 공양왕릉은 1662년(현종 3) 삼척부사 허목이 편찬한 『척주지』와 1855년(철종 6) 삼척부사 김구혁이 쓴 『척주선생안』에 이곳이 공양왕릉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3년마다 왕릉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습과 공양왕릉·궁촌(宮村)·궁기(宮基)·원평(院坪)·궁촌해변·궁촌초교·궁촌교 등 공양왕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궁촌은 임금이 유배되어 머물던 마을이었으며, 궁기는 공양왕의 맏아들 왕석(王奭)이 살았던 곳이며, 원평은 마방(馬房)이 있던 곳이다. 고려조의 왕릉은 대개 군사분계선 이북에 있다. 남한에 남아 있는 것은 강화도의 석릉[21대 희종의 묘]과 홍릉[23대 고종의 묘], 그리고 공양왕릉 뿐이다.
공양왕릉 아래에는 삼척레일바이크 궁촌리정거장이 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는 천연기념물 제363호인 ‘궁촌리 음나무’가 있다. 음나무는 보통 엄나무라고 하는데, 한국의 엄나무 중 최대 거목으로 수령이 1000여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