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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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興龍寺妙化堂浮屠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3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동민 |
건립 시기/일시 | 1681년 - 흥룡사 묘화당 부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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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81년 - 묘화당 입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04월 09일 - 흥룡사 묘화당 부도 포천시 향토 유적 제35호로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9월 - 흥룡사 묘화당 부도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4월 - 흥룡사 묘화당 부도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 종료 |
현 소재지 | 흥룡사 묘화당 부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38 (N38°04'16"/ E127°24'38") |
성격 | 부도 |
관련 인물 | 묘화당(妙化堂)[?~1681]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 전체 높이 152㎝|탑신 146㎝ |
문화재 지정 번호 | 포천시 향토 유적 제35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흥룡사 대웅전 옆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
[개설]
흥룡사는 문화재 관리국에서 편찬한 『문화 유적 총람』에 “고려 태조 때 도선 국사가 창건한 절이라 하나 지금의 대웅전은 6·25 전쟁 이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절 내에는 청암 스님의 부도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부도에 대해서는 “1922년 설하 스님이 중수한 후 흥룡사라 하였는데 청암 스님의 사리를 모신 곳으로 전해지는 팔각 원당형의 부도로서 조각은 거칠고 조선 후기에 많이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높이 1.7m, 둘레 3.2m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흥룡사 묘화당 부도(興龍寺妙化堂浮屠)에 대해 1996년 9월~1998년 4월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를 하였다.
[위치]
남양주에서 철원으로 가는 국도 47호선을 타고 이동을 지나면 도평 교차로가 있다. 도평 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백운 계곡 방면으로 약 600m 가면 도평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화천, 백운 계곡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지방도 372호선[포화로]에 오르게 된다. 그 길을 따라 직진하여 약 2.3㎞ 가면 오른쪽에 흥룡사 어귀가 나온다. 흥룡사 묘화당 부도는 대웅전 옆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흥룡사 묘화당 부도의 규모는 전체 높이 152㎝, 탑신 높이 146㎝이다. 석종(石鐘) 대석(臺石)은 1석으로 모서리를 높게 돋을새김하고 각을 주어 팔각의 평면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팔각 대석은 단판 16엽(葉)의 복련문(覆蓮文)을 장식하였으며 상면에 원형으로 석종 괴임을 마련하였다. 석종은 1석으로 가운데가 배부르지 않은 원주형(圓柱形)으로 얇고 길며, 상부에 원형의 보주(寶珠)받침을 두고 꼭대기가 뾰족한 보주를 올렸다. 대석의 연화문 표현이나 석종의 치석과 결구(結構) 수법이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석종형 부도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
[금석문]
흥룡사 묘화당 부도 한쪽 면에는 세로 두 줄로 ‘묘화당 영연(妙化堂灵燕) 강희 이십 년(康熙二十年)’이라고 주인공과 건립 시기를 음각하였다. 따라서 흥룡사 묘화당 부도는 보문암에서 입적한 것으로 보이는 묘화당의 것으로, 강희 20년인 1681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흥룡사 묘화당 부도는 원래 청암 대사가 창건한 보문암 터에 있었는데, 군부대가 환경 정리를 하면서 가까운 현재의 흥룡사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옮겨 세울 당시 석종 하부에 사리공(舍利孔)이 있었다고 한다. 1986년 4월 9일 포천시 향토 유적 제35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