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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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康厚 |
영어공식명칭 | Lee Ganghu |
이칭/별칭 | 이강호,이경후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남 |
출생 시기/일시 | 1912년 9월 22일 - 이강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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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8년 6월 26일 - 이강후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동맹 휴교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8월 - 이강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78년 9월 1일 - 이강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9년 - 이강후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강후(李康厚)[1912~1978]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 재학 중 동교생 이경채(李敬采)의 석방을 요구하는 동맹 휴교에 참여하고, 맹휴 이탈자 응징에 참여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이강후가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 6월 8일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5학년생인 이경채가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검거되어 기소되었다. 이경채는 1928년 4월 '조선독립선언문'이라는 제목의 격문을 붙이는 등 독립의식이 강한 학생이었는데, 학교 당국은 1928년 6월 19일 이경채를 퇴학시켜 버렸다. 이에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5학년생들은 일본인 교장 시라이[白井]에게 복학을 요구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개최하려는 학부모회에 참석하여 교장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낭독하고 학부모회 개최를 무산시키는 한편, '첫째 교장 및 교직원 여러 명의 반성 촉구, 둘째 이경채의 복학, 셋째 조선인 중심의 교육 실현'을 요구하는 진정서 제출과 함께 1928년 6월 26일 동맹 휴교를 결의하였다.
여기에 이강후, 이강오(李康午) 등 2학년 학생들도 적극 참여하였지만, 오히려 학교는 1928년 6월 27일 주모자로 인정되는 학생 27명을 퇴학시키고, 기타 280명을 무기정학에 처하는 강경 대응을 하였다. 이에 학생들은 동맹 결속을 더욱 강화하고, 이를 위반하여 다른 학교로 전학을 요청하는 등 일탈을 벌이는 일을 막으려 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이강후도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이강후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음과 함께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9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