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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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영어공식명칭 |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노성태 |
[정의]
광주 지역에서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개설]
광주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남구 송암동 주거지와 북구 연제동·광산구 수완지구 수문 유적 등에서 집터와 마을이 확인되었고, 광산구 29곳을 포함한 56곳에서 지배 계급의 무덤인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집터와 주거지 유적]
청동기시대는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청동을 이용하여 제작한 도구가 생활문화 전반에서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치면서 시작되었다. 청동제 무기를 지닌 집단이 지배 계급으로 등장하였고, 본격적인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경제적인 빈부의 격차도 커졌다. 그뿐만 아니라 방어 시설을 갖춘 크고 작은 마을이 곳곳에 들어섰으며, 이를 토대로 공동체 차원의 노동력 동원을 짐작게 하는 족장 등 지배자들의 무덤인 고인돌이 축조되었다.
광주 지역에서 확인된 최초의 주거지는 1977년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광주광역시 남구 송암동 유적이다. 송암동 유적은 높이 20~30m의 구릉지대에 있으며, 1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평면은 원형이며, 바닥 중앙에 2개의 기둥이 설치되었던 흔적과 타원형의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주거지의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서는 대형 갈판이 출토되었으며, 민무늬 토기, 돌화살촉, 미완성 석기 조각 등도 확인되었다. 이 주거지는 ‘송국리형 주거지’로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이다. 송국리 주거지가 기원전 6~4세기 초의 것이라면 송암동 주거지는 기원전 5~4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광역시 남구 송암동 주거지 유적이 조사된 후 송국리형 주거 유적은 최근 집중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2004년에는 광주광역시 북구 연제동 외촌 유적에서 10여 기, 2005년에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지구 수문 유적에서 31기 등이 조사되었다. 31기의 집터가 확인된 수완지구 수문 유적은 높이 40여m의 나지막한 언덕 정상부에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송국리형 주거지는 건물 모양이 네모 형태와 둥근 형태로 나뉘고 각각 시기적인 차이도 있으나 수문마을 유적에서는 네모와 둥근 형태가 서로 혼재하고 있다. 이 유적의 서쪽 언덕에는 장덕동 성덕[11기]·장자[7기]·신완[3기]의 주거지 유적이 수문 주거지 유적과 함께 확인되었는데, 동일 문화 집단의 소규모 마을로 추정된다.
광주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모두 영산강을 배경으로 조성되었고, 언덕의 정상부와 경사면에 축조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마을을 이루었던 집들은 원형과 방형의 형태로 지어졌으며, 내부의 기둥 구조는 대부분 동일하게 축조되었다.
[고인돌]
고인돌은 돌멘(Dolmen)으로 불리는 거석 기념물의 일종으로 북유럽, 서유럽, 지중해 연안 지역, 인도, 동남아시아, 일본 규슈 지역, 중국 동해안 지역과 동북 지역, 우리나라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4만여 기가 분포하고 있어, 전 세계에 분포하는 고인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전라남도 지역에만 2만여 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광주광역시·전라남도는 고인돌의 핵심 지역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은 전라북도 고창, 강화도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광주 지역에서 확인·조사된 고인돌은 광산구 29곳, 남구 15곳, 서구 13곳, 북구 6곳, 동구 3곳 등 56곳에 35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수적인 면에서 보면 고인돌의 축조는 광산구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매월동 돌덧널무덤에서 완전한 형태의 돌칼과 돌끌이 출토된 것을 제외하면 민무늬 토기 조각만 소수 출토되고 있어 유물은 매우 적다. 따라서 당시 전라도 광주 지역 고인돌 사회의 물질 문화의 성격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광주 지역을 대표하는 고인돌 유적 중 하나는 광주광역시 서구 송학산 기슭에 있는 용두동 고인돌이다. 용두동 고인돌은 남북으로 3열로 배치되어 있는데 우측 열의 배열 상태가 가장 완전하다. 현재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10기이며, 덮개돌이 없는 굄돌 7기가 주변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2~3기가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1㎞ 떨어진 인근 송학산에서 채석해 온 것으로 보인다. 용두동 고인돌군의 가장 큰 특징은 남도 유일의 북방식 고인돌 1기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3호 고인돌로 불리는 이 고인돌은 모두 3기의 굄돌이 있는데, 북방식 고인돌보다 그다지 높지 않은 변형된 모습이지만, 북방식 고인돌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