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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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景烈祠 |
이칭/별칭 | 경렬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경열사길 46[망월동 9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효주 |
건립 시기/일시 | 1644년 - 경열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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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1년 - 경열사 철거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1년 - 경열사 복원 |
현 소재지 | 경열사 - 광주광역시 북구 경열사길 46[망월동 911] |
원소재지 | 경열사 -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 |
성격 | 사당 |
양식 | 골기와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정지장군유적보존회 |
관리자 | 정지장군유적보존회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고려 말기 장군정지를 배향한 사당.
[개설]
경열사는 고려 말 무신 정지(鄭地)[1347~1391]를 비롯하여 정충신(鄭忠信), 유사(柳泗), 고중영(高仲英) 등 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사당 뒤쪽 언덕 위에는 정지의 묘가 있는데, 전형적인 고려시대 방식의 예장석묘(禮葬石墓)로서 '정지장군예장석묘'라는 명칭으로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지는 본관 하동(河東), 시호는 경렬(景烈)이다. 1374년(공민왕 23) 중랑장을 거쳐 전라도안무사가 되어 왜구 토벌과 수군 창설에 이바지하였다. 전라도순문사, 해도원수(海道元帥)를 역임하였고, 양광·전라·경상·강릉도 도지휘처치사(都指揮處置使)를 지냈다. 김저(金佇)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나 위화도 회군의 공으로 2등 공신이 되었다. 말년에 개성부판사(開城府判事)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나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경열사길 46[망월동 911]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1644년[인조 22]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에 창건되었으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서 1871년 철거되어 유허비만 남았다. 지금의 경열사는 '정지장군유적보존회'에서 1979년부터 현재의 자리에 복원을 시작하여 1981년 완공하였다.
[형태]
사당 입구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고, 경내에는 사우, 내삼문, 외삼문과 유물관, 관리실, 경열사유허비, 유적정화 기념비 등이 있다.
[현황]
경열사는 유물전시관이 있으며, 「관음포대첩도」 및 『태조강헌대왕실록』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 문화재 설명판이 있으며, 경내에 경열사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매년 11월 18일 민관군합동으로 제향 행사를 지내 정지장군을 추모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정지장군의 고향은 나주였지만 생을 마감한 곳이 광주이어서 충청, 전라, 경상 3도의 사림이 의논하여 유허가 있는 곳에 사당을 건립하게 된 경위가 『경열사요람』에 밝혀져 있어 건립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