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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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州李氏 |
영어음역 | Gwangju Yissi |
영어의미역 | Gwangju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집필자 | 송만오 |
세거지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고수면 와촌리|해리면 사반리|흥덕면 사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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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와촌리 |
입향시기/연도 | 1500년대|1800년대 |
성씨시조 | 이자성 |
입향시조 | 이부|이명걸 |
[정의]
이자성을 시조로 하고 이부·이명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연원]
광주이씨는 신라에서 내사령(內史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을 시조로 한다.
[입향경위]
광주이씨 고창군 입향조인 이부(李斧)는 고려 말의 명신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7대손으로 1508년(중종 3)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에서 태어났다.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아버지 우천(牛泉) 이약수(李若水)가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억울함을 풀어 줄 것을 호소하다가 투옥되자 3족을 멸한다는 말에 화가 미칠까 두려워 가족을 데리고 유랑하다가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에 정착하였다.
이명걸(李命傑)은 음애공(陰厓公) 이은(李誾)의 9대손으로 1794년(정조 18)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동간리(東澗里)에서 태어났다. 광산김씨(光山金氏) 김명엽(金命燁)의 딸과 결혼하여 처가인 고수면를 내왕하다가 와촌리(瓦村里)의 아름다운 경치에 끌려 정착하였다.
[현황]
2009년 현재 이부의 아들 4형제 중 이사원(李士元)의 후손들이 아산면 남산리에, 이사온(李士溫)의 후손들이 해리면 사반리에, 이사흠(李士欽)의 후손들이 흥덕면 사천리에 살고 있다. 이명걸의 후손들이 고수면 와촌리에 7대째 살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창군에 살고 있는 광주이씨는 총 183가구에 487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