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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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元甫 蓄財 事件 |
영어공식명칭 | A Case of Jeongwonbo Chukj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배상현 |
[정의]
고려 말 전직 관리인 정원보가 거창현 안집사를 사칭하다 죽임을 당한 사건.
[개설]
낭장(郞將) 벼슬을 지낸 정원보(鄭元甫)라는 사람은 일찍이 천녕(川寧)에서 안집사(安集使)을 사칭하다 옥에 갇히기도 한 인물이었다. 정원보는 1383년(우왕 9) 3월 거창에서도 안집사를 사칭하며 자기의 이익을 취하다가 발각이 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역사적 배경]
정원보 축재(蓄財) 사건이 발생한 1383년은 왜구가 전국을 휩쓸고 다닐 때였다. 그리고 지방의 농민들은 중앙의 권세가와 지방관의 수탈로 곤궁이 극에 달하였던 때였다. 조정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방관의 명칭을 감무에서 안집으로 바꾸면서 지방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전란으로 인해 지방관이 임명되지 않고 비어 있는 곳이 많은 상황에서 전직 관리가 안집을 사칭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정원보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경과]
『고려사(高麗史)』 권135[열전48 우왕 9년 3월]에 따르면 "이전에 낭장 벼슬을 지낸 정원보는 일찍이 천녕현(川寧縣)에서 안집사를 사칭하며 죄수를 달아나게 한 경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또 거창현에서 안집사를 사칭하며 부임하여 사리(私利)를 채우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다."라고 한다. 이전에 정원보는 상원수(上元帥) 안우(安祐)가 이끄는 안주(安州) 전투에 나아가 공을 세우기도 한 인물이었고, 무관으로 낭장에 이르기도 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고려 말 권문세족의 정치 농단과 북쪽으로 홍건적의 침입, 남쪽으로 왜구가 창궐하는 등 내우외환의 사회적 혼란을 틈타 지방관을 사칭하며 축재를 일삼았다.
[결과]
정원보는 그 전에도 천령에서 안집사를 사창하여 죄수들을 달아나게 하는 등 비행을 일삼았는데, 이어 거창에서도 안집을 사칭하다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정원보의 거창 안집 사칭 사건은 고려 말의 사회 모순이 지방관을 사칭하여 개인의 축재를 일삼는 형태로 비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