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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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門洞-由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균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서 동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쌍문동의 유래」는 현재 쌍문동에 살던 계성(鷄聲) 부부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이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정성껏 시묘살이를 하다가 죽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성을 지극히 여겨 효자문(孝子門)을 두 개 세운 데서 ‘쌍문(雙門)’이라는 동명(洞名)이 생겨났다는 등 3가지 이야기에 대한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9년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간행한 『도봉 구지』에 쌍문동의 유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채록되어 있다.
[내용]
도봉구 쌍문동 동명의 유래는 몇 가지가 전해 온다.
첫째는, 현 쌍문동 286번지 근처에 계성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계성과 그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계성의 아들이 생전에 부모를 정성껏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부모의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 해 동안 살다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성을 지극히 여겨 그의 묘 근처에 효자문을 두 개 세운 데서 ‘쌍문’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옛날에 현 창동 우체국 부근에 열녀문이 두 개 있었다 하여 ‘쌍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거나, 쌍갈래 길에 이문(里門)이 있어 ‘쌍갈무늬’라 하던 것이 ‘쌍문’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셋째는, 효자문이 두 개라 ‘쌍문’이라 한 것인데, 도봉구의 효자 남궁지(南宮遲)와 그의 처 하동 정씨(鄭氏), 그의 아들 효자 남궁조(南宮鋽) 부자가 고종으로부터 효자문을 받았는데, 부자(父子)의 묘소가 노해 파출소[옛 쌍문동 중심지]에서 볼 때 남과 북에 있어 ‘쌍문’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모티프 분석]
「쌍문동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두 개의 효자문’, ‘두 개의 열녀문’ 등이다. 「쌍문동의 유래」는 결국 효자와 열녀를 중요시하던 당대의 문화가 뿌리 깊게 담겨 있는 지명 유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