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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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重陽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집필자 | 육민수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음력 9월 9일을 지내는 명절.
[개설]
중양절 은 음력 9월 9일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 명절(重日名節)의 하나이다. 3월 3일[삼짇날], 5월 5일[단오], 7월 7일[칠석]처럼 홀수, 즉 양(陽)의 수가 겹치는 날이 중양(重陽)이지만, 특히 9월 9일을 가리켜 중양절이라고 한다. 삼짇날에 강남에서 온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는 날이 중양절이라고 하며, 높은 곳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등고(登高)의 풍속이 전해진다.
[연원 및 변천]
중양절 은 중국에서 시작된 풍속이다. 제나라 경공(景公)이 중양절에 우산(牛山)에 올라 울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전국 시대부터 등고의 풍속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등고의 풍속에 대한 다른 유래도 전해지는데,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이 학생인 항경(恒景)에게 “9월 9일에 항경의 집이 큰 난리를 만날 테니 집으로 돌아가 수유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다.”고 조언해 준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시대 군신들의 모임이 중양절에 있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국가적 잔치가 행해졌고, 조선 시대에는 기로연(耆老宴)을 열거나 특별히 과거 시험을 보기도 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의 경덕왕(景德王), 충담사(忠談師), 표훈대덕(表訓大德)조에는 충담사가 “매년 중삼일(重三日)과 중구일(重九日)에 차를 다려서 남산(南山)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彌勒世尊)에게 드린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신라에서는 중양절에 부처께 차를 공양하는 풍속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절차]
중양절 에는 등고의 풍속이 대표적이다. 수유(茱萸)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셨으며 높은 산에 올랐다. 특히 도봉구에는 도봉산과 도봉 서원이 있어서 도봉 서원을 출입하던 많은 선비들이 중양절에 도봉산에 올라 가을을 만끽하며 시를 읊었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의 「가을날에 도봉산에서 노닐다[秋日遊道峯山]」 같은 시도 이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중양절 에는 가을철의 대표 꽃인 국화를 감상하였으며, 술잔에 국화를 띠우는 범국(泛菊),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시주(詩酒) 등의 행사를 가졌다. 나이 많은 이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을 베풀기도 했으며, 추석 때 햇곡식으로 제사를 지내지 못한 집안에서는 이날 뒤늦게나마 조상에게 천신(薦新)을 하기도 하였다. 중양절에 기로연을 연 것이나 장수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신 것은 국가에서는 물론 민간에서도 이날을 경로(敬老)의 날로 인식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농촌에서는 추수로 인해 바빠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특별한 행사를 갖기는 힘들었다. 퇴비 만들기, 논물 빼기, 밭작물의 파종과 수확 등 여러 가지 일이 산적해 있어 특별한 행사를 하기는 어려웠다. 또 중양절은 돌아가신 날을 모르는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날이기도 하였다. 지역에 따라 죽은 사람의 생일이나 칠석날 지내기도 하지만 망자의 기일을 모르는 경우 중양절에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중양절 은 국화가 많이 피는 때이므로 그 꽃을 따서 국화주를 담가 먹는다. 술 한 말에 꽃 두 되쯤의 비율이 되게 하여 베주머니에 넣고 술독에 담가 두었다가 먹는다. 국화를 따서 국화 찹쌀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또한 중양절은 제비가 강남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이라고 여기며 마지막 수확을 서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