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5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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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睦天顯 |
이칭/별칭 | 공저(公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52-1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향주 |
출생 시기/일시 | 1669년 - 목천현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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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89년 - 목천현 증광시 생원 급제 |
추모 시기/일시 | 1764년 - 목천현 복권 |
부임|활동지 | 목천현 부임지 - 평안북도 태천군 |
묘소|단소 | 목천현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사천(泗川) |
대표 관직 | 태천 군수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공저(公著). 증조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좌찬성에 추증된 목서흠(睦敍欽)으로, 권탁(權晫)의 딸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와 혼인하여 목처선(睦處善), 목기선(睦嗜善), 목겸선(睦兼善), 목지선(睦志善), 목내선(睦來善)을 낳았다. 할아버지인 목내선은 남인의 영수였던 허목(許穆)의 문인으로서 기사환국(己巳換局)에서 서인을 축출하는 데 앞장서 좌의정에 보임(補任)되었고, 윤창언(尹昌言)의 딸을 배필로 맞이하여 목임일(睦林一)과 목임창(睦林昌)을 낳았다. 아버지는 목임일로, 우창적(禹昌績)의 딸인 단양 우씨(丹陽禹氏)와 혼인하여 목천현(睦天顯)[1669~?], 목천임(睦天任), 목천광(睦天光), 목천운(睦天運)을 낳았다. 목천현은 홍만조(洪萬朝) 딸인 풍산 홍씨(豊山洪氏)와 혼인하여 목성관(睦聖觀), 목성항(睦聖恒), 목성함(睦聖咸), 목성익(睦聖益), 목성정(睦聖鼎) 등 다섯 아들을 두었다.
[활동 사항]
목천현은 20세가 되던 해인 1689년(숙종 15) 증광시에 응시하여 생원 2등 19위에 올랐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남인이 몰락하면서 할아버지 목내선과 아버지 목임일이 절도(絶島)에 안치되자 가세가 기울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목내선과 목임일이 금세 유배형에서 풀려난 덕분에 1707년(숙종 33) 휘릉 참봉에 임명될 수 있었다. 55세가 되던 해인 1723년(경종 3) 증광시에 응시하여 병과 14위로 급제하였으며, 영조 조에는 태천 군수로 부임하였다.
1730년(영조 6) 아우 목천임이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옥사를 당하자, 아들 목성관과 함께 목천임의 죄에 연좌되어 먼 섬으로 귀양을 갔다. 1738년(영조 14) 목천현·목성관 부자를 연좌한 것은 억울한 일이라는 송인명(宋寅明)의 주장이 제기되자 영조가 비로소 목천현 부자를 육지로 돌려보내도록 명하였으며, 1764년(영조 40)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청을 받아들여 목천현의 직첩을 돌려주었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사천 목씨 묘역 내에 9대조 목진공(睦進恭), 증조부 목서흠, 아버지 목임일의 묘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