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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54
한자 睦進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52-18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향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17년연표보기 - 목진공 경기도 관찰사 제수
몰년 시기/일시 1426년연표보기 - 목진공 졸
묘소|단소 목진공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사천(泗川)
대표 관직 호조참판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사천(泗川). 증조할아버지는 고려에서 대호군(大護軍)으로 치사한 목군경(睦君慶)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진사 목충달(睦忠達)이다. 아버지는 정용 낭장을 역임한 목손검(睦孫儉)이며, 어머니는 능직 박천상(朴千祥)의 딸인 창원 박씨(昌原朴氏)이다. 부인은 면천 군사 안습(安習)의 딸인 안산 안씨(安山安氏)로 목보남(睦寶男)과 목계남(睦繼男) 두 아들을 낳았다.

[활동 사항]

목진공(睦進恭)[?~1426]은 고려 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조선 전기 태조·태종·세종 대의 문신으로 활동하였다. 태종의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순금사 대호군(巡禁司大護軍)·판전사시사(判典祀寺事)·우부대언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417년(태종 17) 경기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곡식의 풍흉을 살펴 조세를 매기기 위한 손실(損實)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죄목으로 파직되었다. 1422년(세종 4) 호조 참판으로 부임하였고, 같은 해 북방을 평정한 데 대해 하례하기 위해 명나라 북경(北京)에 다녀왔다. 1425년(세종 7) 진하사(進賀使)로서 다시 한 번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사천 목씨 묘역 내 6세손 목서흠(睦叙欽), 8세손 목임일(睦林一), 9세손 목천현(睦天顯)의 묘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묘는 단분 단독장이며 남쪽을 향해 있다. 오른쪽에 1426년(세종 8)에 건립된 묘표(墓表)가 있고, 앞쪽에는 1716년(숙종 42) 목임일이 글을 짓고 9세손 목천근(睦天根)이 글씨를 써서 만든 묘표가 남아 있다. 목임일목천근이 남긴 묘갈(墓碣)에 따르면, 목진공 묘의 존재는 오랜 세월 잊혔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현재 위치에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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