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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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州郡海等村面靈菊里被打致死女人具召史獄事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류정선 |
[정의]
개항기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인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영국리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역사적 배경]
살인 사건은 『양주군 해등촌면 영국리 피타치사 여인 구소사 옥사 죄인 성명 수도 성책(楊州郡 海等村面 靈菊里 被打致死女人 具召史 獄事 罪人 姓名囚徒 成冊)』에 수록되어 있다.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여 전인 1897년 12월 천축사(天竺寺)에 장정이 돌입하여 구소사(具召史)의 딸을 겁간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구소사는 같은 동리의 사람이었던 김복이(金福伊)가 범인이라고 의심하여 항시 그를 모함하는 소문을 흘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김복이가 구소사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경과]
1898년 1월 경기도 양주군 서원천점(書院川店)[서원천점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서원천이 오늘날 경기도 양주시 불곡산에서 발원하여 양주시 장암동을 거쳐 중랑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서 그 명칭이 도봉 서원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서울특별시 도봉구 또는 그 인근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에 있는 김교의(金敎宜)의 집에 혼사(婚事)가 있었다. 김복이는 김교의 집에 갔다가 구소사를 만났다. 그는 구소사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혼사장을 먼저 빠져나갔다. 그리고 동구(洞口) 밖에 숨어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구소사와 그의 아들 오성길(吳聖吉)을 구타하였다. 이 사건으로 구소사가 사망하였다.
[결과]
사건 발생 후 구소사의 아들인 오성길이 양주 군수 임원호(任原鎬)에게 소(訴)를 올렸다. 양주 군수는 1차로 시신을 조사하고, 고소인 오성길 및 구소사가 거주하는 면·동리의 역원, 사건 관련자, 죄인 김복이를 차례로 심문·조사하였다. 조선 시대 인명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해당 지역의 수령이 1차로 조사한 후 인근 지역의 수령이 2차로 조사하였는데, 이 사건에서는 포천 군수인 윤필영(尹弼榮)이 1차 조사와 동일한 방법으로 조사하였다. 사건의 1, 2차 조사 보고서는 『양주군 해등촌면 영국리 피타치사 여인 구소사 옥사 죄인 성명 수도 성책』으로 작성하였다. 이 책은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