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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268
한자 鳳生里
영어공식명칭 Bongsae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봉생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오숙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서산군 정미면 봉생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57년 11월 6일 - 충청남도 서산군 정미면 봉생리에서 충청남도 당진군 정미면 봉생리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2012년 1월 1일 - 충청남도 당진군 정미면 봉생리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봉생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078㎢
가구수 130세대
인구[남/여] 271명[남자 144명, 여자 127명]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봉(鳳)이 낳았다 하여 봉생리(鳳生里)라 하였다. 구씨가(具氏家)에서 장사를 치르는데 하관 직전에 지사와 상주 간의 모종의 알력으로 지사가 조금 더 파야 된다고 하여 다시 파기 시작하였고 밑바닥 돌장을 떠 일으키자 봉황새 한 쌍이 날았다. 이때 급히 다시 덮는 과정에서 봉황의 발 하나가 부러졌고 하나는 날아서 은봉산에 숨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으로 봉황이 살던 부엉담이 있어서 부엉담 또는 붕담리(鵬潭里)라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일도면 두문리를 병합하여 봉생리라 고쳐서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하여 정미면이 서산군에서 당진군으로 편입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군 정미면 봉생리에서 당진시 정미면 봉생리로 개편되었다.

[자연 마을]

봉생리의 자연 마을은 6개이다. 두문동은 조선 세조 당시 개성에 72현의 두문동이 있었다. 이곳 두문동은 72현 중 구인 문씨가 낙향하여 은둔하기 위해 정착하여 두문불출하였다. 당시 홍성의 성삼문[사육신의 1인]이 수차례 이곳에 찾아와 단종 복위 거사에 협력하기를 권하였으나 천시 인사(天時人事)가 부당하단 말 뿐, 일언반구도 없이 철저한 은둔자가 되었다 하여 이 고을을 '두문동'이라 부른다. 말우리는 조선 초 신평 이씨가 일시 침체된 형편에서 이곳으로 낙향하던 차, 말을 타고 동네의 음지 지대[양지는 구씨가 먼저 정착]에 들어가던 중 말이 가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울기만 하자, 이곳에서 하마(下馬)하여 산지를 쓰고 살았다 하여 마명동이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현재도 구씨와 이씨가 대부분 살고 있다. 장재울은 유래는 알 수 없다. 붕담은 옛날 봉이 날아갈 때 이곳 어딘가에 있던 연못가에서 봉황새가 잠시 쉬었다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하여 ‘붕담(鵬潭)’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숫골은 고대면 항곡리 경계에 있는 산골로 옛날 숯을 구어 ‘숫골’이라 부른다. 위골은 마명동 상부에 있는 곳이다.

[현황]

2016년 11월 기준으로 봉생리의 면적은 3.078㎢, 가구 수는 130세대, 인구수는 271명[남자 144명, 여자 127명]이다. 마을 회관, 경로당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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