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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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明 十四賢 |
영어공식명칭 | Daemyeong Sipsa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해당하는 팔공산 명동에 은거한 조선 후기 대구 지역 유생 14인.
[내용]
대명 14현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굴욕의 화의가 성립되자, 청나라를 배격하고 명나라를 숭상한다는 뜻의 배청숭명(背淸崇明)을 결의한 대구 지역의 유생 14인을 일컫는다. 대명 14현은 경주최씨가 세거한 지역인 팔공산 아래 명동(明洞)[현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으로 거처를 옮기고 숭정처사(崇禎處士)[명나라 17대 황제 의종(毅宗)을 사모하며 산림에 은거한 선비를 지칭하는 말]를 자처하면서 모두 ‘명(明)’ 자가 들어가는 호(號)와 시(詩)를 지었다. 이런 대명 14현의 이야기는 그 후손들에게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오다가 230여 년이 지난 1868년(고종 5)에 옥천전씨(沃川全氏)의 집안에 전하여 오는 옛 상자(箱子)에서 대명 14현의 인적 사항과 행적, 결사 내용이 적힌 「명동제현수계맹첩(明洞諸賢修稧盟帖)」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모임을 결성하여 명동에 비석을 건립하고 1882년에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대명14현을 추모하는 재실인 경현당(景賢堂)을 건립하여 매년 제사를 드리며 추모하고 있다.
경현당에 걸려 있는 편액 「대명동동은록(大明洞同隱錄)」에 기록된 대명14현의 이름, 호, 본관은 다음과 같다.
최도남(崔道南)[본관 경주]은 호를 명동주인(明洞主人), 이언직(李言直)[본관 영천]은 명호산인(明湖散人), 전극초(全克初)[본관 옥천]는 명천어자(明川漁子), 정기(鄭錡)[본관 동래]는 명루노수(明樓老叟), 허계(許誡)[본관 김해]는 명곡유인(明谷幽人), 서장태(徐長泰)[본관 달성]는 명령처사(明嶺處士), 채생만(蔡生晩)[본관 인천]은 명계학사(明溪學士), 양시좌(楊時佐)[본관 중화]는 명암거사(明巖居士), 도신행(都愼行)[본관 성주]은 명애병수(明崖病叟), 류여장(柳汝樟)[본관 문화]은 명당거사(明塘居士), 이찬(李贊)[본관 덕산]은 명포노인(明圃老人), 임이현(任以賢)[본관 풍천]은 명와은사(明窩隱士), 우석연(禹錫璉)[본관 단양]은 명야일민(明野逸民), 여위흥(呂渭興)[본관 성주]는 명월산인(明月山人)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