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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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齋山 |
영어공식명칭 | Seongjaesan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광희 |
전구간 | 성재산 - 강원도 철원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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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성재산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 |
성격 | 산 |
높이 | 471m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에 있는 산.
[개설]
성재산은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에 있으며, 표고는 471m이다. 병자호란 때 승리한 격전지이며 정상에 산성이 남아 있다.
[명칭 유래]
성재산(城齋山)은 성제산(城濟山), 성산(城山), 자산(慈山), 자모산(慈母山) 등으로 불리는데, 이러한 지명은 산에 성(城)이 있어서 유래한 지명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성산성(城山城)은 현 북쪽 4리[약 1.57㎞]에 있으며 돌로 쌓았다. 둘레가 1489척, 높이가 4척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대동지지』에도 “고성(古城)은 북으로 4리인데, 성산(城山)이라고 칭하며, 둘레는1489척이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성재산은 병자호란 때 승리한 격전지로 당시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와 병마사 류림이 마태부(馬太夫)와 용골대(龍骨大)가 이끌고 침공해 오는 수만 명의 호군(胡軍)을 근왕병(勤王兵) 2,000명과 김화의용병(金化義勇兵) 300명으로 적을 섬멸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친 역사가 깊은 곳이다.
『해동명장전』에는 병마사(兵馬使) 유림(柳琳)이 김화의 자산(慈山)에서 호군(胡軍)을 맞아 싸웠다는 기록이 있고, 『국사대사전』에는 관찰사(觀察使) 홍명구(洪命耉)가 김화의 자모산성(慈母山城)에서 적을 맞아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성재산의 성을 처음 쌓은 것은 최소한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가등산성(加藤山城)으로도 전해지고 있어 임진왜란 때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의 주둔지였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자연환경]
성재산은 민통선 북쪽에 있어 자연환경에 대한 정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질은 중생대의 대보화강암류이며, 산지의 남동쪽으로 화강이 흐른다. 성재산 정상부의 북쪽은 북한의 오성산[1,062m]이 조망된다.
[현황]
성재산이 있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는 현재 민통선 이북에 속하여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다. 성재산 정상에는 전장 982m, 높이 12m 규모의 석성(石城)이 남아 있는데, 이 성을 성재산성 또는 자모산성이라 한다. 또한 성(城)과 관련하여 성주고개, 성주골, 성잿굴, 성주동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