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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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內面 石花里 晋陽 河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석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형수 |
전구간 | 강내면 석화리 진양 하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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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강내면 석화리 진양 하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석화리 |
성격 | 집성촌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석화리에 있는 진양 하씨 사직공파 영상공 문중의 집성촌.
[개설]
하진(河珍)을 파조로 하는 사직공파(司直公派)의 12세 영상공(領相公) 하부(河溥)가 1433년(세종 15) 무렵 석화리에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3세 하정서(河呈瑞), 14세 하련(河漣)·하영(河泠) 형제 등 하부의 자손들이 석화리 주변에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명칭 유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석화리는 1910년대 작성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石花里/돌고지’로 기록되어 있다. 돌고지, 돌꼬지, 돌곶이는 돌로 이루어진 길게 뻗은 산줄기를 의미하는 말인데, 한자로 쓰는 과정에서 ‘꼬지’를 ‘꽃[花]’으로 옮겨 석화리로 표기하게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자연환경]
석화리는 북쪽은 낮은 산줄기에 기대고 남쪽은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마을 뒤편에 인지정(仁智亭)이 세워진 산줄기 돌곶이 있다. 북서쪽이 미호강과 접하여 홍수가 나면 마을 앞 들판이 물에 잠겨 농사짓기가 힘들었으나, 1970년 양수 시설, 1999년 배수 시설을 갖추면서 경작이 수월하여졌다.
[현황]
진양 하씨가 번창하였을 때는 석화리에 70여 호가 살았다고 하나 2023년 현재는 많지 않다. 충청풋살체육공원이 들어서고 다수의 전원주택이 개발되면서 예전 모습을 점차 잃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