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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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風 郭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도연 |
본관 | 현풍 곽씨 본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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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현풍 곽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
세거|집성지 | 현풍 곽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 |
성씨 시조 | 곽경 |
입향 시조 | 곽성 |
[정의]
곽경을 시조로 하고 곽성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개설]
현풍 곽씨(玄風 郭氏)는 곽경(郭鏡)을 시조로 하고, 중랑장공파의 파조인 곽성(郭惺)이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현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으로 들어온 후 19세손 곽치중(郭致中)이 남일면 화당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로 이주하여 동족 마을을 형성하였다.
[연원]
곽경은 본래 중국 송나라 홍농인(弘農人)이다. 송나라 문연각 한림학사로 7명의 학사들과 함께 1133년 고려에 입국하여 1138(인종 16) 문과에 급제하여 평장사(平章事)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졌다. 이러한 연유로 포산현[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이 현풍 곽씨들의 세거지와 관향이 되었다. 곽경 이래 후손들은 고려 말기까지 개성을 중심으로 경기 일원에 흩어져 살았다. 4세손 곽연은 곽기정(郭基正)과 곽한정(郭漢正) 두 아들을 두었는데, 조선 전기부터 종파(宗派)인 곽기정의 후손들은 중부·호남·서북 지역으로 세거지를 개척하였고, 차파(次派)인 곽한정의 후손들은 현풍을 중심으로 한 영남 일대에서 세거지를 확대하였다.
[입향 경위]
곽성은 곽경의 12세손으로 중랑장공파의 파조이다. 곽성은 중랑장을 지냈으며, 아내는 숙부인 신안 주씨로 판서를 지낸 주희의 딸이다. 아들은 직장을 지낸 곽보산이다. 곽성이 충청북도 청주시로 입향한 연유에 대하여서는 확실하지 않으나, 사촌인 곽사가 계유정란으로 피신한 것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현풍 곽씨 인구 통계를 보면 전국적으로 4만 3626가구 정도가 확인되며, 청주시에는 651가구, 2,268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는 곽여찬(郭汝贊), 곽진은(郭鎭殷), 곽원호(郭元浩), 곽상조(郭相祚) 등 현풍 곽씨 4대에 걸친 효자비와 곽여찬, 곽진은, 곽원호 등 3대의 묘소가 있다. 또한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괴정리에는 1635년(인조 13) 임진왜란 때 왜병에게 정조를 지키려다 죽은 전주인(全州人) 이대윤(李大潤)의 아내인 현풍 곽씨의 정절을 기리는 현풍 곽씨 열녀각이 있는데, 열녀각은 1840년(헌종 6) 중건하고 1970년 보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