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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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漢陽 趙氏 |
영어공식명칭 | Hanyang J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용 |
본관 | 한양 조씨 본관 - 서울특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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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한양 조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궁현리 |
세거|집성지 | 한양 조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궁현리 |
성씨 시조 | 조지수 |
입향 시조 | 조승윤 |
[정의]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승윤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한양 조씨(漢陽 趙氏)의 시조는 고려 후기에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趙之壽)이고, 아들 조휘(趙暉)는 쌍성총관부의 총관이었다. 4세손 조돈(趙暾)과 아들 조인벽(趙仁壁)은 공민왕이 영토를 수복할 때 공을 세웠다. 조돈은 이후 예의판서와 검교밀직부사를 지냈으며 조인벽은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李子春)의 사위가 되어 조선의 건국에 참여하였다. 조인벽의 동생 조인옥(趙仁沃)과 조인벽의 두 아들 조온(趙溫)과 조연(趙涓) 및 8촌 사이인 조영무(趙英茂) 등 4명이 공신이 되었다. 한양 조씨는 조돈의 아들 대에 분파되어 조인벽은 양렬공파(襄烈公派), 조인규(趙仁珪)는 첨한성공파(僉漢城公派), 조인옥은 충정공파(忠靖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충정공파는 조인옥의 아들 조뢰(趙賚)·조재(趙䝴)·조갱(趙賡)·조관(趙貫)이 각각 절효공파(節孝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사평공파(司評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입향 경위]
청주에 정착한 한양 조씨 계열은 조인옥을 파조로 하는 충정공파이다. 한양 조씨 충정공파는 조인옥이 개국 공신이 되고 아들 대에 모두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조뢰, 조순생(趙順生), 조명(趙銘)이 3대 연속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가세가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나 조뢰가 계유정난 등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아들과 손자까지 유배를 당하면서 타격을 받고 목천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11세손 조승윤은 기묘사화 이후 목천에 낙향하였다가 당시 궁현(弓峴)에 살고 있던 외할아버지 유안수(柳岸秀)를 따라 강내면 궁현리로 이거하였다. 유안수에게는 딸만 둘이 있었는데 각각 조수(趙璲), 김순(金循)과 혼인하였다. 조승윤은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현황]
1930년 실시한 국세 조사 통계 자료에 의하면 한양 조씨는 강내면 연정리에 49가구가 거주하였다.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한양 조씨는 291가구, 947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12세손 조강(趙綱)은 1570년(선조 3) 스승 송인수의 관작 회복을 계기로 변경수(卞景壽)와 이득윤(李得胤) 등 지역의 사족들과 함께 청주 신항서원(淸州 莘巷書院)을 건립하였다. 청주 신항서원은 현재 상당구 용정동에 있다. 낭성8현 중 1명인 조강을 제향하는 표충사가 강내면 연정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