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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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川 朴氏 |
영어공식명칭 | Suncheon Par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용 |
[정의]
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인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개설]
순천 박씨(順川 朴氏)는 평양 박씨(平陽 朴氏)라고도 하는데, 순천의 옛 지명이 평양이기 때문이다. 순천 박씨의 시조는 후백제 견훤(甄萱)의 사위로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개창에 공을 세워 개국 공신에 책록된 박영규(朴英規)이다. 박영규는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좌승(左丞)에 올랐으며 승주군(昇州君)에 봉하여졌다. 이후 후손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았는데, 박난봉(朴蘭鳳)이 과거에 급제하여 정승을 지내고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에 봉하여지면서 박영규를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순천(順天)으로 삼아 세대를 이어 오고 있다. 그러나 이후의 세계가 분명하지 않아 고려 충숙왕 때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박숙정(朴淑貞)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연원]
충청북도 청주 일대에 세거하는 순천 박씨들은 이조 판서를 지낸 박중림(朴仲林)의 둘째 아들로 집현전교리를 지낸 박인년(朴引年)[?~1456]을 파조(派祖)로 하는 교리공파(校理公派)의 후손들이다. 박인년은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후 우정언, 지평을 거쳐 1456년(세조 2) 집현전교리가 되었는데,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화를 입었다.
[입향 경위]
8세손 박인룡(朴仁龍)의 셋째 아들로 승사랑(承仕郞)을 지낸 박의륜(朴宜倫)이 처음으로 청주 서강내일면(西江內一面) 송곡(松谷)으로 이거하면서부터 순천 박씨가 청주 지역에 처음으로 입향하였다. 박의륜의 부인은 남양 홍씨로 둘째 아들 박곤손(朴坤孫)은 통사랑(通仕郞)으로 훈도(訓導)를 지냈다. 박곤손의 부인은 청주 한씨로 한맹성(韓孟誠)의 딸이고, 아들은 박기정(朴箕精)이다. 순천 박씨는 청주의 유력 가문인 청주 한씨, 남양 홍씨 등의 집안과 혼인하였다. 사육신 사건으로 멸문의 위기에 놓였던 순천 박씨는 청주에서 터전을 잡게 되었다.
[현황]
1930년 국세 조사 통계 자료에 의거하면 순천 박씨는 사주면 일대에 149가구가 거주하였다.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를 참고하면 순천 박씨는 355가구, 1,058명이 거주하였다.
[관련 유적]
박곤손(朴坤孫)의 아들 박기정은 자가 은경(殷卿)인데 박기정 묘는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있으며 동주(東洲) 성제원(成悌元)이 찬(撰)한 묘지(墓誌)가 있다. 박기정의 넷째 아들 박춘무(朴春茂)와 다섯째 아들 박춘번(朴春蕃)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청주성을 탈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박춘무의 둘째 아들인 박동명(朴東命)은 자가 시응(時應), 호는 매은당(梅隱堂)인데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국사리 산146에 묘가 있으며, 접지고개에는 박동명의 애마가 묻혀 있는 의마총(義馬塚)이 있다. 흥덕구 비하동에는 민정중(閔鼎重)의 건의에 따라 정려를 받은 박동명 충신각이 있다.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운 박민웅(朴敏雄)의 묘소는 내수읍 원통리에 있다. 박민웅의 5세손 박익동(朴翼東)의 셋째 아들인 박노중(朴魯重)은 성리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40세 때 청주 지역 유림들의 중망으로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 유사(有司)에 추천되어 서원의 일을 맡았고, 후에는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다. 주봉마을에는 박춘무와 박춘번 등을 모신 민충사(愍忠祠)와 박춘무 삼대창의 사적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