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547
한자 淸州邑
영어음역 Cheongju-eup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기헌

[정의]

일제 강점기 청주 지역에 있었던 행정 구역.

[변천]

청주읍의 출범은 1931년 4월 1일 부령 제103호(1930년 12월 29일 공포)로 청주면에서 승격되면서부터 이다. 이후 1946년 6월 1일 군정법령 제84호(1946년 5월 1일 공포)로 청주읍의 중심부가 청주부로 승격됨에 따라 외곽지역을 청원군으로 개칭하여 청주·청원이 둘로 나뉘어 각각 기초자치단체를 운영하게 되었다.

1949년 8월 15일에는 청주부가 청주시로 승격되어 오늘날 청주시와 청원군으로 행정구역을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활동사항]

1931년 청주는 읍으로 승격되었고 1934년 조선시가지 계획령이 발표된 후 청주읍은 경부본선 조치원역에서 분기된 조선철도 충북선에 연결되었고 국도인 경성~청주와 청주~춘천, 지방도인 청주~보은과 청주~진천 및 청주~부강 등의 교차점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현황]

1935년 경 청주시의 현황은 청주공립 심상고등소학교, 청주제1공립보통학교, 청주제2공립보통학교, 사립대성보통학교, 사립청남학교 등의 초등학교와 청주고등보통학교, 청주공립농업학교, 청주고등여학교, 재단법인 청주상업학교 등의 중등학교, 유치원 2개 등의 교육기관이 있었다.

사회시설로는 청주박인회, 소민병원, 충북유린회 등이 있었으며 금융기관으로는 조선식산은행지점, 조선상업은행지점, 조선금융조합연합회지부, 조선무진주식회사 등이 있었다. 공장시설로는 경도부 군시제사주식회사 청주분공장, 조선면자제조 주식회사, 수출직물 공예포 면가공전습소, 남북면업주식회사 청주조면공장, 금성철공소 등이 있었다.

이후 인구증가와 이에 따른 주택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함으로써 1939년 청주시가계획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시세의 발전과 인구 및 주택신축의 급증 등 시가지의 과밀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한 산림과 녹지의 상실과 풍치의 훼손 현상이 발생하여 1943년 청주시가지계획에 따라 시민의 후생과 도시방공에 맞는 근본방책을 수립하고자 하였으나 광복과 함께 이러한 계획이 성사되지 못했다.

광복 후 1946년 미군정 하에서 청주읍청주부로 승격되었고 청주군은 청원군으로 개칭되었으며 이때부터 청주부와 청원군은 분리된 독립행정구역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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