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018 |
---|---|
한자 | 厲神祭 |
영어음역 | Yeosinje |
영어의미역 | Sacrificial Rite for the uncared-for spirits |
이칭/별칭 | 여제(厲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영진 |
[정의]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
[연원]
일찍이 중국에서 주인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이 사람들을 해친다고 하여 그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는데, 특히 청(淸)나라 세조(世祖)가 주현(州縣)마다 주인 없는 영혼을 모신 여단(厲壇)을 세우고 매년 제사케 함으로써 널리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이르러 1404년(태종 4)에 도성에 여단을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냈으며, 또 전국의 주현(州縣)에도 고을의 안녕을 위하여 북쪽에 여단을 세우고 매년 관행제를 지내게 하였다.
[변천]
조선시대 청주에도 관아 북쪽 5리, 지금의 상당구 내덕동에 여신을 모신 여단을 세우고 예전(禮典)에 따라 매년 청명일(淸明日), 7월 15일, 10월 1일에 정기적으로 세 번 관행제로 지냈는데 1845년(헌종 11)부터는 청명일(淸明日)과 10월 1일에 두 번만 제사를 지냈다.
여제는 먼저 청주목사가 성황사(城隍祠)에서 발고제(發告祭)를 지낸 다음 여단에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냈다. 또 고을에 유행병이 크게 돌면 ‘고을의 외로운 영혼들이 분노한 탓’이라 하여 여신을 달래는 제사를 지냈으며, 고을에 큰 전투가 있어 많은 사람이 죽으면 재앙을 예방하기 위하여 미리 원혼들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다.
[현황]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우리나라의 여제를 폐지하면서 청주의 여단도 허물어져 지금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