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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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克和 |
영어음역 | No Geukhwa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정의]
조선 후기의 의병.
[가계]
본관(本貫)은 교하(交河)이며, 자는 여화(汝和)로 청주 출신이다.
[활동사항]
병자호란 때 아우 노극시(盧克時)와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감사(監司) 정세규(鄭世䂓)의 진에 이르러 싸웠으나 관군이 크게 무너지므로 단삼(單衫)에 혈서하여 말에 붙이고 형제가 용감히 싸워 전사하였다.
말이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혈서에 ‘군신의 죄가 중하여 처자와 인연을 끊는다’라고 하였다. 피묻은 단삼으로 가산(駕山)에 초혼장(招魂葬) 하였으며, 조정에서는 1647년(인조 25) 정려를 명하고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에 증직하였다. 뒤에 다시 병조참판에 추증(追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