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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견성군(堅城郡)은 신라 경덕왕 때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개편한 포천의 옛 이름이다. 포천은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견성으로 바꾸었다. ‘홀(忽)’이 ‘성(城)’을 뜻한다는 정약용(丁若鏞)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를 참조하면, ‘마홀’은 ‘마성(馬城)’을 뜻하며, 이것이 ‘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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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상성북리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서낭신[성황신]을 모셔 놓은 신당. 군내면 성황당은 군내면 상성북 2리의 주민들이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던 민간 신앙 유적이다. 본래 성황당은 토지와 마을을 지켜 준다는 서낭신이 깃들어 사는 안식처로서 예부터 성스러운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성황당은 서낭신이 길에서 떠도는 악령으로부터 비롯된 질병과 재해, 호환을 막아 준다고 믿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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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을 가는 길목으로서 경기도 포천시의 자연 지리적 조건과 지정학적 위치, 역사 문화적 특징 등을 살펴보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 포천 관광 자원 개발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포천은 동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영평천과 포천천이 T자형을 이루며 흐르고 있다. 면적은 서울의 1.4배 크기이다. 우리나라의 중앙에 위치한 관계로 동서·남북 교류의 중심지로서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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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소재한 누각과 정자를 포괄하는 총칭. 누정(樓亭)이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서,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집을 의미한다. 이를 정루(亭樓), 정각(亭閣), 정사(亭榭) 등이라고도 한다. 누정의 평면 구조는 정사각형으로부터 직사각형·육각형·팔각형·자형·부채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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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있던 제단과 사당. 단묘(壇廟)는 조선 시대 경기도 포천 지역에 위치한 각종 제단과 사당을 지칭한다. 포천 지역의 단묘로는 관에서 설치한 사직단(社稷壇), 향교에 있는 문묘(文廟), 기우제단, 여단(厲壇), 성황사(城隍祠)를 비롯해 민간에서 세운 화산 서원이나 용연 서원, 충목단(忠穆壇) 등이 있다. 단묘는 마을의 유지 및 해당 지역민들의 유교적 교화, 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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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실 덕림군 이자의 묘. 덕림군(德林君) 이자(李孜)[1482~1541]의 자는 근보(勤甫)이고, 정양군(定陽君) 이순(李淳)의 넷째 아들이다. 부인은 장례원 사평(掌隷院 司評) 강학손(姜鶴孫)의 딸 진산 현부인(晉山縣夫人) 진주 강씨(晋州 姜氏)이다. 아들은 진천군(晋川君) 이옥정(李玉貞)과 부림부정(富林副正) 이옥곤(李玉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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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 2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독곡 성석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견성지(堅城志)』의 명승(名勝)조에 독곡 폭포(獨谷瀑布)에 관한 기록이 있다. “현(縣)의 북쪽 10리 천주산(天柱山) 아래 독곡촌(獨谷村)에 있다. 좌우에 폭포가 있는데 수십 길이나 된다. 기암이 벌려져 솟아 있다.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이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이곳에 정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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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공숙(公叔). 아버지는 진사 류연(柳演)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동생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류지선(柳智善)이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류전(柳㙉; 동생 류예선의 아들)의 백부이다. 류인선(柳仁善)[1492~?]은 포천현 서쪽 자작촌[지금의 포천시 자작동]에서 태어나고 생활하였다. 5형제 중 맏이로, 동생인 류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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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숙윤(叔胤). 할아버지는 명종 때 효우비를 받은 류인선(柳仁善)이고,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류첩(柳堞)이다. 동생으로 임진왜란 때 효행으로 정표를 받은 류홍서(柳弘緖)가 있다. 류찬서(柳纘緖)는 포천현 서쪽 자작촌[지금의 포천시 자작동]에서 태어나 생활하였다. 임진왜란 때 동생 류홍서가 어머니 윤씨 부인을 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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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계윤(季胤). 할아버지는 효우비를 받은 류인선(柳仁善)이고,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류첩(柳堞)이다. 형은 임진왜란 때 효행으로 정표를 받은 류찬서(柳纘緖)이다. 류인선의 동생 류지선의 아들 류성(柳城)의 양자로 들어갔다. 류홍서(柳弘緖)는 포천현 서쪽 자작촌[지금의 포천시 자작동]에서 태어나고 생활하였다. 임진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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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무봉리 절터는 향적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러 문헌에 “향적사(香積寺) 재 향적산(香積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곳이 향적사의 옛터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동국 여지지(東國輿地誌)』에서 사찰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데 비해 『경기 읍지(京畿邑誌)』와 『견성지(堅城志)』에는 “금무(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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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설치된 내지 봉수. 포천의 봉수는 전국 5로의 주요 선로 중에서 두만강 부근인 함경북도 경흥 서수라(西水羅) 우암(牛巖)을 기점으로 서울 목멱산에 도달하는 동북쪽 직봉에 속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의 포천현에는 독산(禿山) 또는 독현(禿峴), 잉읍점(仍邑岾) 또는 잉읍현(仍邑峴) 봉수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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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여 활동하는 종교. 경기도 포천시는 동으로 백운산-청계산을 경계로 경기도 가평군과, 서로는 지장산-소요산-국사봉-왕방산-해룡산을 경계로 경기도 연천군·경기도 동두천시·경기도 양주시와, 북으로 명성산-광덕산-백운산을 경계로 강원도 철원군·강원도 화천군과 각각 접경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 지형 내륙 지역이다. 따라서 산이 많아 불교문화가 성행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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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중준(仲峻). 할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 신상(申鏛)이고, 아버지는 별검 신화국(申華國)이다. 4형제 중 둘째아들이다. 첫째는 병조판서 신잡(申磼)이고, 셋째는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패한 후 자결한 삼도 순변사 신립(申砬)이며, 넷째는 경기 병사로 임진강에서 전사한 신할(申硈)이다. 포천에서 태어난 신급(申礏)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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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본관은 영산(靈山). 신주(辛鑄)[1430~1526]는 1453년(단종 1) 무과에 급제하고, 1457년(세조 3) 중시(重試)에 합격하였다. 1460년(세조 6) 원종공신 3등에 책봉되었고, 이후 전라도 절도사, 함길도 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함길도 절도사로 있을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 참여하였다. 1472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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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안순창(安順昌)은 원래 강원도 회양(淮陽)이 고향인데, 1731년(영조 7)에 내촌면 소학리로 이사하였다. 평소 근검절약하며 살았으나 홀로 되신 어머니만은 극진하게 봉양하였다. 1746년(영조 22) 3월 살고 있던 집에 불이 나,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불길이 맹렬히 치솟았다. 겨우 몸만 빠져나온 안순창은 아무리 찾아도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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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안양사 터에 대해서는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향적산(香積山)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견성지(堅城志)』와 『범우고(梵宇攷)』에 폐사되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8세기 후반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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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포천 지역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 개관. 포천 지역은 한탄강을 따라 서북 지역 또는 한강 하류 지역과 연결되고, 추가령 지구대를 따라 동북쪽으로 주민의 이동로가 펼쳐져 있다. 사방으로 교차적인 위치에 있어서 문화적인 교류가 많았다는 것이 선사 시대의 문화상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포천의 선사 문화는 한강의 상류 지역과 서해의 도서 지역, 동해안의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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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의 교통 통신 시설 및 숙박 시설에 대한 총칭. 역원(驛院)은 경기도 지역에 있던 교통 통신 및 숙박 시설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포천 지역의 경우 함흥으로 가는 대로(大路)에 위치한 관계로 여러 역원이 설치되었다. 포천현에는 안기역(安奇驛)·벽탄석원(碧呑石院)·공덕원(功德院) 등이, 영평현에는 양문역(梁文驛)이 설치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송우참(松隅站)·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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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열녀. 염두찬(廉斗纘) 처 최씨(崔氏)는 평민으로 태어나 염두찬에게 시집갔다. 어느 날 남편이 고기를 잘못 먹고 갑자기 사망하자 장례를 치르는 날 자신도 극약을 먹고 남편의 관 옆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견성지』에는 소금물을 먹고 죽었다고 전한다. 나라에서 최씨의 정절을 기려 정문을 내렸다. 열녀 정문은 포천 가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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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국경(國卿). 할아버지는 증직 공조참의 오경춘(吳慶春)이고, 아버지는 증직 한성부 우윤 오만(吳晩)이다. 어머니는 청주 양씨 양수기(楊壽起)의 딸이고, 부인은 단양 우씨 우신달(禹信達)의 딸이다. 자식은 3남매를 두었고, 아들은 오상호(吳相虎)이다. 오백주(吳伯周)는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어룡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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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 2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반석. 『견성지(堅城誌)』에는 옥동 반석(玉洞盤石)에 대하여 “반석(盤石)에는 50명이 앉을 만하고 맑은 물이 흐르며 둘레에는 단풍과 전나무가 우거져 있다”라는 내용과 함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과 불정산인(彿頂山人) 홍지성(洪至誠)이 봄가을이 되면 옥동 반석을 찾아 노닐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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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경이 꿈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에 대해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沃川夜夢 到抱川臥龍潭)」[옥천에서 밤에 꿈을 꿨는데 포천의 와룡담에 도달했네]은 조선 후기 문신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이 몸은 옥천에 있지만 꿈속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臥龍潭)에 대하여 지은 한시이다. 와룡담이 현재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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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산성. 운악산성(雲岳山城)에 대해서는 조선 후기에 쓰인 『견성지(堅城誌)』에서 “현의 동쪽 25리에 있다. 가평 현등산 서악이다. 봉우리 꼭대기에 옛 대궐 터가 있다”라고 하는 것 이외에 이렇다 할 기록이 없다. 따라서 축조 양식이나 수습된 유물을 통하여 추정할 수밖에 없다. 우선 축조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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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극후(克厚), 호는 우복당(愚伏堂). 아버지는 현감을 지내고 효우 정려 비를 받은 유예선(柳禮善)이며, 선조 때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의 외숙이다. 부인은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유전(柳㙉)[1531~1589]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왕방산 밑에서 출생하여 남쪽 20리 소흘산 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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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할아버지는 조선 개국 공신 유만수(柳曼殊)이며, 아버지는 중추원 부사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추증된 유원지(柳原之)이다. 아들 다섯 명을 두었다. 유종(柳淙)[1388~1445]은 1398년에 벌어진 제1차 왕자의 난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방원(李芳遠) 세력에게 죽음을 당하자 포천현 서쪽 자작리[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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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명중(明仲). 아버지는 진사 유연(柳演)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효우 정려 문을 받은 유인선(柳仁善)의 동생이며,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유전(柳㙉)[유예선의 아들]의 숙부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효행으로 정표를 받은 유홍서(柳弘緖)의 양할아버지이다. 5형제 중 넷째로, 형 유인선(柳仁善), 유은선(柳恩善), 유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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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백규(伯圭), 호는 추담(楸潭)·운계(雲溪). 아버지는 서윤(庶尹) 유여해(兪汝楷)이며, 부인은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아들은 효자 정려를 받은 유회일(兪晦一)이다. 유창(兪瑒)[1614~1692]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유동리에서 태어났다. 1635년(인조 13) 생원이 되고 1650년(효종 1) 과거에 급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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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장숙(長叔), 호는 계안와(計安窩). 아버지는 숙종대 어영대장과 우참찬을 지낸 윤이제(尹以濟)이다. 윤기경(尹基慶)[1669~1726]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용정리에서 태어났다. 1693년(숙종 19) 진사시에 합격하고, 1699년(숙종 25) 문과에 급제한 후 진주 목사를 지냈는데, 항상 청렴하고 성실하게 다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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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에 살았던 효자. 본관은 전주. 자는 국빈(國賓). 고조할아버지는 종실(宗室)의 의성군(義城君)이다. 이관하(李觀夏)는 포천시 가산면 화산리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품행이 방정하여 가난한 살림에도 부모 봉양에 지극정성이었다. 아버지가 오랜 기간 병을 앓았는데, 음식을 손수 받들어 드시게 하고 약도 먼저 맛을 본 후에 드렸다. 밖에서 맛난 음식을 대하면 먹지 않고 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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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弓裔)가 세운 태봉(泰封)의 수도는 강원도 철원이었다. 따라서 궁예와 포천 지역은 일견 아무 관련도 없는 듯하다. 궁예와 관련한 설화는 주로 철원 지역에서 많이 전해 오며, 그 외에 연천·안성 등지에서도 전한다. 하지만 포천 지역 또한 철원과 인접한 곳으로, 지금까지도 유적·유물이나 산·고개·바위 등 지명 등에 태봉[궁예]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포천시는 행정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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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효자. 사인(士人) 이작(李焯)의 서자이고, 판결사(判決事) 이수(李琇)의 5세손이다. 이진철(李震喆)은 견성현 갈와리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지극한 정성으로 어버이를 섬겼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부유한 집에서 품을 팔아 부모를 섬겼지만 늘 부족하여 겨우 빈천함을 면할 정도였다. 후에 면천(免賤)이 되었어도 옛 주인을 섬기는 데 예의를 다하였다. 면천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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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효녀. 첨지 정기(鄭璣)의 처 최씨(崔氏)는, 출가하기 전에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가자 단검을 들고 울부짖으며 하늘에 맹세하고 호랑이에게 다가갔다. 이에 호랑이가 슬그머니 물러나 도망하였다. 최낭(崔娘)으로도 전한다. 조정에서 정려를 하사하였다. 정려는 포천현의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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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녀. 만호 정창국(鄭昌國)의 처 창원 유씨(兪氏)의 이름은 용녀(溶女)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편이 병으로 죽자 직접 염을 하여 장례를 치렀다. 집안사람들이 난리를 피하라고 권유하자, “죽는 것은 하늘에게 달린 것으로, 난리를 당하였는데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듬해 정월에 청나라 병사들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노복들의 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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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 한천 부원군(漢川府院君) 정온(鄭溫)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정제이다. 조득남(趙得男)[1594~1636]은 포천현에서 동쪽으로 20리[8㎞] 떨어진 설악산 아래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성리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효성스러웠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勇力)이 뛰어나 주위의 촉망을 받으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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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한양. 자는 성득(聖得). 할아버지는 참판 조위명(趙威明)이고, 아버지는 참봉 조구령(趙九齡)이다. 조수덕(趙守德)[1695~1745]은 포천읍 출신이다. 타고난 효성으로 부모 봉양에 극진하였으며 『소학(小學)』을 행실의 근본으로 삼았다. 부모의 뜻을 받들고 거동에 불편이 없도록 하였으며, 처자는 굶주리게 할지언정 부모님께는 항상 좋은 음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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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청송(靑松). 아버지는 현감 심주관(沈周觀)이고, 남편은 사인(士人) 조억(趙億)이며, 시아버지는 참봉 조구령(趙九齡)이다. 조억(趙億)의 처 청송 심씨(沈氏)는 효경상순(孝敬祥順)하여, 시부모를 받드는 데 성의를 다하였고 남편을 섬기는 데도 어긋남이 없었다. 남편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잠자리에 들지 않고 약을 구하고 끓이는 데 몸과 마음을 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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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회여(晦汝), 호는 송천(松泉). 우의정 조연(趙涓)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구(趙緱)이다. 조경(趙絅)의 조카이다. 조위명(趙威明)[1640~1685]은 7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작은아버지 조경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음보로 세자익위사 부수(世子翊衛司副率)가 되었다가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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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자우(子雨), 호는 녹문(鹿門). 할아버지는 조익남(趙翼男)이고, 아버지는 우참찬 조경(趙絅)이다. 외할아버지는 이조 판서 김찬(金贊)이다. 완양군(完陽君)에 추봉된 이명웅(李命雄)의 사위이다. 조위봉(趙威鳳)[1621~1675]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서 태어났다. 1642년(인조 20)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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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한양. 자는 경소(敬所). 우의정 한평부원군(漢平府院君) 조연(趙涓)의 6세손이고, 아들은 용주(龍洲) 조경(趙絅)이다. 조익남(趙翼男)[1564~?]은 포천현 북쪽 10리 떨어진 가차리(加次里)[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살았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다. 나이 50세에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3년을 시묘하면서 소식(疏食)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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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한양.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막내 동생인 목사(牧使) 조숭조(趙崇祖)의 현손이다. 조익창(趙益昌)은 포천현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 정교촌(鄭橋村)[현 포천시 가산면 정교리]에서 살았다. 천성이 곧고 자못 상의기부(尙意氣賦)하였으며, 효우(孝友)하였다. 노모를 모시는 데 성의를 다하여 몸소 정성껏 봉양하였고, 네 동생과 화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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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조항일(趙恒一)은 자는 여중(汝中)으로, 포천현의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용주(龍洲) 조경(趙絅)에게 학문을 배웠다. 성장해서는 홀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혈서를 써서 천지신명께 빌며 자신의 수명을 줄여서라도 아버지의 수명을 연장케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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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수성. 형은 효자 최천주(崔天柱)이고, 최천후(崔天後)의 사촌 형이다. 부인은 광주(廣州) 김씨이다. 고려 시대에 수성백(隋城伯)에 봉해진 최영규(崔永奎)의 후손이다. 『포천 군지』에 수록된 효자 최천후(崔天候)는 사촌 동생 최천후(崔天後)와 같은 인물로 추측된다. 최천극(崔天極)[1602~1636]은 포천의 읍치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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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수성. 효자 최천주(崔天柱)·최천극(崔天極)의 사촌 동생이고, 고려 시대에 수성백(隋城伯)에 봉해진 최영규(崔永奎)의 후손이다. 『견성지(堅城誌)』에 수록되어 있는 최천후(崔天後)와 같은 인물로 추측된다. 최천후(崔天候)[1612~1636]는 포천 가산면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효성이 뛰어났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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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고려 시대 포주(抱州)는 원래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견성군(堅城郡)이 되었다가 고려 초에 포주로 개칭된 행정 구역이다. 고려 현종 때 양주(楊州)에 소속되었다. 고려 시대 지방 제도의 정비는 982년(성종 즉위년) 6월에 최승로(崔承老)의 건의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983년 2월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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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가 축조한 성. 포천 반월성(抱川半月城)은 일반적으로 반월산성(半月山城)이라고 하는데, 해발 284.5m의 청성산(靑城山)에 축조된 반월형의 테뫼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1,080m이다. 전체적인 형상이 반달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반월산성이라고 불리는데, 포천 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에 있는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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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2003년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포천은 고려 초에 포주(抱州)로 개칭된 이래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양주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 양주에서 분리되어 감무(監務)를 두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경기도가 좌도와 우도로 분리되면서 경기좌도에 속하였다. 14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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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도농 복합 도시. 포천은 본래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으로서 757년(경덕왕 16)에 견성군(堅城郡)으로, 고려 초기에 포주(抱州)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423년(태종 13)에 지방 군현제 정비와 함께 포천으로 고쳐지면서 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포천군이 되었으며, 2003년에 도농 복합 시로 승격하였다. 행정 구역은 14개 읍·면·동[1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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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포천은 고려 초에 포주(抱州)로 개칭된 이래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양주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 양주에서 분리되어 감무(監務)를 두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경기도가 좌도와 우도로 분리되면서 경기좌도에 속하게 되었다. 1413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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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설운동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마을에서는 이곳을 절골이라고 부르는데, 청자 및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조성된 절터로 추정된다. 해룡사에 대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에 “해룡사는 해룡산의 감지(鑑池) 옆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견성지(堅城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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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크게 정부 기관, 지방 자치 기관, 민간단체, 향토지 간행을 위한 임시 조직체 또는 개인 간행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책은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로, 「포천현(抱川縣)조」, 「영평현(永平縣)조」에 포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