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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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驛院 |
이칭/별칭 | 역관(驛館), 역참(驛站), 우역(郵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시대 포천 지역의 교통 통신 시설 및 숙박 시설에 대한 총칭.
[개설]
역원(驛院)은 경기도 지역에 있던 교통 통신 및 숙박 시설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포천 지역의 경우 함흥으로 가는 대로(大路)에 위치한 관계로 여러 역원이 설치되었다. 포천현에는 안기역(安奇驛)·벽탄석원(碧呑石院)·공덕원(功德院) 등이, 영평현에는 양문역(梁文驛)이 설치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송우참(松隅站)·만세교참(萬歲橋站) 등과 같은 역참(驛站)이 추가로 개설되기도 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역원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와 숙박 및 공문서의 전달과 관수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이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포천현 역원조(驛院條)에는 “안기역은 현 북쪽 4리에 있다[安奇驛 在縣北四里]”라고 하였으며, 이 밖에도 벽탄석원과 공덕원이 있었음을 기록하였다. 또한 같은 책 영평현 역원조에는 역과 관련해 “양문역 현 동쪽 9리에 있다. 항간에서 독흘이라 부르는데, 양골이 와전된 것인 듯하다[梁文驛 在縣東九里 俗號獨訖 疑梁骨之訛]”라고 기록하고 있다.
[내용]
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는 역(驛)으로 안기역과 양문역이 있었고, 원(院)으로 벽탄석원과 공덕원 등이 있었다. 이들 역원은 포천 지역이 함흥으로 가는 대로에 위치한 관계로 관리들의 출입이 잦았고, 안기역의 경우는 1424년(세종 6) 10월과 1426년(세종 8) 10월, 1459년(세조 5) 10월 등에 사냥을 나온 국왕이 머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은 이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15세기 말경 찰방으로 부임한 윤지(尹漬)에 의해 중수되기도 하였다.
[변천]
조선 후기에 작성된 포천 지역의 읍지인 『견성지(堅城志)』 역원조에는 안기역과 벽탄석원·공덕원 외에도 몇 개의 역참이 확인된다. 즉 현의 서쪽 5리 지점에 있던 장가참(場街站), 현의 서쪽 10리 지점에 있던 발막참(撥幕站), 현의 서쪽 20리 지점에 있던 송우참, 현의 북쪽 20리 지점에 있던 만세교참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한편 영조대 중반경에 제작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영평현 역원조에 따르면 양문역에 대마(大馬) 3필, 중마(中馬) 4필, 하마(下馬) 3필을 보유하고 있으며, 역리(驛吏) 47명과 노(奴) 49명, 비(婢) 56명이 배속되었다. 또한 포천현 역원조에서는 안기역에 역마(驛馬) 9필(匹), 역노(驛奴)가 15명, 역비(驛婢) 5명이 배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 밖에 만세교참, 송우참 등이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