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방의 항일투쟁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일찍이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하여 1904년에 청주에 청남학교(淸南學校)를 설립하고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안희제(安熙濟)·김동삼(金東三) 등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창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후 상해...
-
일제침략기 애국지사들의 항일 독립투쟁 운동. 투쟁과 활동의 유형에 따라 의사, 열사 등으로도 불린다. 의사는 성패에 관련 없이 일제의 침략에 맞서 무기를 들고 친일파나 일본인 고관을 처단 응징하거나 조선총독부 등 침략 기구를 폭파 파괴하는 행동을 결행한 분을 지칭하며, 열사는 일제의 침략에 분개하여 자결하거나 또는 그에 준하는 투쟁을 한 사람을 지칭한다. 독립운동사는 1894년 일...
-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김학규 지대장이 이끄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편입되어 남경지구(南京地區)에서 초모활동과 군사훈련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원활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경술국치를 통분히 여긴 그는 스승 김제환(金濟煥)과 함께 일제에 항거하다가 1913년 일경에 피체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 후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그는 1920년 2월 서울에서 김광제(金光濟) 등과 더불어 조선노동대회(朝鮮勞動大會)를 조직하여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해 5월에는 김영만(金榮萬) 등 89인과...
-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의열단에 참여하고, 구미 열강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일찍이 만주로 건너갔다가 1919년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신규식(申圭植)[1879~1922]의 밀명을 받고 국내에 들어와 스코필드 박사가 촬영한 일제의 학살 장면 등의 사진 50매를 임시정부에 전달하여 일제의 잔인성을 세계에 폭로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활동과 연유해서 1919년 1...
-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의 행정작용. 치안의 개념은 구체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을 목적으로 범죄자를 체포, 구금하는 등 국가의 통치권에 의한 계몽, 지도, 명령, 강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행정작용은 현재 경찰기관이 주로 맡고 있다. 경찰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politeia'라는 말이 라틴어로 전화한 것으로서,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는...
-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원 활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일 천도교인으로서 최동호(崔東昊) 등과 함께 조선은행 앞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해 5월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에 적극 협조,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임시정부의 기관지인『독립신문(獨立新聞)』제작에 참여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서울에서 최동호·정창수(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