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881 |
---|---|
한자 | 李道宰永世不忘碑 |
영어의미역 | Stele for Yi Dojae |
이칭/별칭 | 학부대신이공도재영세불망비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156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병호 |
성격 | 비 |
---|---|
건립시기/일시 | 1898년 |
관련인물 | 이도재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58㎝ |
너비 | 58㎝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1566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학부대신 이도재의 불망비.
[건립경위]
이도재는 갑신정변 후 개화당과 가깝다는 이유로 신기선과 함께 고금도와 흥양현 여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갑오개혁 후 학부대신으로 등용되어 섬사람들만의 행정 구역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법부대신 신기선에게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완도군, 지도군과 함께 돌산군이 창설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군민들이 이도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형태]
이도재 영세불망비는 비좌와 머릿돌을 갖춘 구조이다. 높이는 158㎝이고, 너비는 58㎝이다.
[금석문]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개 은덕이 사물에 베풀음이 있으면 사물 또한 감동이 있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내가 비재로서 이 고을에 역사하여 사민(士民)의 공언을 들으니 우리 박해(薄海)의 창생이 많은 세월을 육읍(六邑)에 분속하여 만모침색(慢侮侵索)함이 항상 복분(覆盆)의 한탄이 있었더니 천운이 극반(極反)함에 융은(隆恩)이 특항하사 섬을 모아 군을 만드니 이에 처음으로 일월(日月)을 보는지라 감화한 생령들이 답무흔변(踏無欣抃)하니 높은 성덕을 감히 능명(能名)할 수 없도다.
참정(參政) 이공(李公)이 해도(海島)에 영복할 때 궁서(窮澨)의 긍측(矜惻)한 정세를 익히 알았음으로 매양 생각이 작지 않았더니 다행히 본도에 내순하여 위로 고우(顧憂)를 덜고 아래로 민은(民隱)을 살피더니 때마침 경장(更張)을 만나 여러 번 계달(啓達)하여 이에 성군(成郡)함에 이르니 어찌 우리 공의 은덕이 아닐까. 나도 또한 흔감하여 감히 새겨 말하되 성사는 하늘에 있고 모사는 사람에 있는지라 부(否)자가 가고 태(泰)자가 오니 예를 이어 새로 군(郡)을 세우니 비단 이곳뿐 아니라 완도(莞島) 지도(智島)도 같은지라.
공의 은혜를 말하면 하해(河海)도 한량없고 공의 덕을 말하면 산악(山岳)도 영원히 잊으려지지 않을 것이다. 길이 잊지 않을 것을 맹서하니 더욱 억만년이로다. 광무 2년 무술(戊戌) 동(冬) 군수 홍희찬"
[의의와 평가]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어 비석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갑오개혁 당시 지방 행정 구역 개편에 대해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