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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757
한자 汝自里
영어음역 Yeoja-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여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0.7㎢
총인구(남, 여) 349명(남 181명, 여 168명)
가구수 131가구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여수반도의 서쪽인 여자만의 중앙에 있는 섬마을인 여자리는 대동, 마파, 송여자 세 개의 마을로 구성되었다.

[명칭유래]

여자도는 본래의 이름이 ‘넘자섬’이다. ‘넘’은 넘는다는 뜻이며 ‘자’는 산을 말하는 고어로, ‘넘자’란 말은 섬의 높이가 낮아 파도가 산을 넘어서 생겨난 말로 풀이할 수 있는데, 이는 낮은 산으로 이루어진 여자도의 섬의 지형과도 맞아떨어지는 이름이다. 여자도란 이름은 ‘넘자’의 뜻을 풀어 한자로 표기하면서 ‘넘’은 남이란 뜻의 ‘너 여(汝)’로 표기하고 자는 ‘스스로 자(自)’로 표기하여 ‘여자(汝自)’라고 하게 되었다.

여자도의 마을로는 가장 큰 마을인 대동마을이 있으며 남쪽 마을은 남풍, 즉 마파람이 부는 마을이어서 마파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여자도의 작은 섬인 송여자도에는 송여자마을이 있다. 본래 이름은 솔넘자섬이다. 솔은 작은 모양을 뜻하는 말로 작은 섬이란 의미를 갖지만 솔을 ‘소나무 송(松)’으로 표기를 하였기 때문에 소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으로 오해하기 쉽다.

마을에서 떨어진 외막골, 붉은 바위의 해변인 붉은독, 길이 만나는 곳의 의미인 질고지, 활처럼 휜 해변 활꼬밭, 효성 깊은 며느리의 전설이 내려오는 각시바, 왜적으로부터 마을을 구하고 힘이 장사였다는 최장군의 전설이 내려오는 샘북넘과 장사바구 등의 땅이름들이 전해져 온다.

[형성 및 변천]

임진왜란 무렵에 승주군 낙안에 살던 남원방씨가 이주하여 마파마을에 살았다고 하며, 초계최씨가 대동마을로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광산김씨, 김해김씨, 남원방씨, 초계최씨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1896년 돌산군이 설치되면서 옥정면 여자도리가 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수군 화정면 여자리가 되었다. 이때 인근의 운두도달천도여자리에 포함되었다가 1983년 운두도화양면으로, 달천도소라면으로 편입되었다. 1998년 여천시·여천군·여수시가 여수시로 삼여통합됨에 따라 여수시 화정면 여자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해안선 길이 7.5㎞인 여자리는 대여자도와 소여자도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높은 곳도 41m로 섬 대부분이 낮은 구릉과 평지로 되어 있다. 여자도 주변의 여자만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남해안 연안 지역의 특징인 반폐쇄성 해역이다.

1982년 수산자원보전지구로 지정될 만큼 수산 자원의 서식 및 산란에 적합한 환경을 갖고 있다. 2005년도 해양수산부의 발표에서도 우리나라 갯벌 중 가장 좋은 등급인 2등급의 갯벌로 알려진 곳이다. 피조개와 키조개를 비롯하여 각종 어종이 풍부하다.

[현황]

2007년 말 현재 면적은 0.7㎢이며, 총 131가구에 34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순천만, 득량만, 여자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면 소재지인 백야리 북서쪽 27.5㎞ 지점에 있다. 동쪽 4.5㎞ 지점에 화양면소라면, 북서쪽으로 벌교읍, 서쪽으로는 고흥반도와 접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고구마·보리·무·마늘·땅콩 등이 생산되고, 참조기·멸치·낙지·새우·붕장어 등이 많이 잡힌다. 여수시 소라면 섬달천마을 입구에 있는 도선장에서 여자리와 수시로 연결되는 나룻배가 있다. 1941년에 개교한 초등학교는 1984년부터 분교가 되었다가 현재는 교사 한 명에 학생 한 명이 있다고 한다. 여자리의 물 사정은 좋지 않은 편인데, 이 때문에 장수하지 못한다는 주민의 이야기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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