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370
한자 觀魚臺
영어공식명칭 Gwaneodae
이칭/별칭 상대산 관어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산18-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2015년 - 관어대 복원
현 소재지 관어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상대산지도보기
성격 정자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영덕군
관리자 영덕군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정자.

[위치]

관어대(觀魚臺)영덕군 영해면에 있는 상대산(上臺山)[183m] 정상에 있다. 상대산성황당산(城隍堂山)이라고도 불린다. 상대산 정상에 올라서면 서쪽은 바위 절벽이 있고, 동쪽으로 동해가 펼쳐져 있다. 북쪽은 백사장을 끼고 울진군 후포면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포항 호미곶을 바라볼 수 있다. 현재의 관어대는 2015년 건립된 것이고, 원래의 관어대는 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절벽에 있었다고 한다.

[변천]

현재까지 발견된 문헌 중 ‘관어대’라는 명칭이 처음 확인되는 것은 안축(安軸)[1282~1348]이 쓴 「단양 북루의 시에 제하여 부치다-병서-[寄題丹陽北樓詩 幷序]」이다. 이 글에 따르면, 1310년대 안축이 영해부의 주부로 부임하였을 관어대에서 노닐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적어도 1310년부터 관어대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색(李穡)[1328~1396]이 쓴 「관어대부(觀魚臺賦)」를 보면 “동해(東海) 석벽(石壁) 밑에 임하여 노는 고기를 셀 만하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명칭의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관어대는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단양부지』 등의 읍지 및 지리지류의 누정 항목에 확인되나, 언제 소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형태]

관어대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관어대를 노래한 작품]

관어대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명승지 중 하나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러한 까닭에 전통시대 많은 인사가 관어대를 방문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고려시대 관어대를 노래한 시는 안축이 쓴 「단양 북루의 시에 제하여 부치다 병서」를 시작으로 이색의 「신석보를 전송하며[送申碩甫]」, 이숭(李崇)의 「관어대에 올라[登觀魚臺]」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다수의 작품이 확인되는데, 영덕 지역에 부임하거나 유배를 온 인물이 남긴 작품이 많다. 안노생(安魯生)의 「관어대」를 시작으로 황수신(黃守身)의 「관어대」, 고형산(高荊山)의 「관어대에 올라[登觀魚臺]」, 이언적(李彦迪)의 「관어대」 등이 있다. 영덕 지역 출신 인물이 남긴 작품으로는 백현룡(白見龍)의 「9월 이양원[함]과 같이 관어대에 오르다[九月同李養源涵 登觀魚臺]」, 이함(李涵)의 「관어대 백문서의 운에 차운하다[觀魚臺次白文瑞韻]」, 박돈복(朴敦復)의 「대에 오르는 감회가 있다[登臺有懷]」 등이 있다. 관어대를 노래한 작품 중 시 외에 부(賦)의 형식으로 쓴 것은 이색의 「관어대부」, 김종직의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 남국주(南國柱)가 쓴 「삼가 목은이선생의 관어대부에 차부하다[敬次牧隱李先生觀魚臺賦]」 등 모두 세 편이다.

[현황]

2015년 이색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상대산 정상에 관어대를 복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2021년 현재 관어대는 2015년 복원한 것으로 건축적 가치는 없다. 하지만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 영해 지역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문화 교류의 공간으로 활용되며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공간으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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