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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391
한자 朴廷賓
영어음역 Bak Jeongbin
이칭/별칭 국빈,이우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종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남도 양산시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밀양
대표관직 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국빈(國賓),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박중미(朴中美)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박주한(朴柱漢)이고, 할아버지는 박동석(朴東奭)이다.

[활동사항]

박정빈은 창원부사 외에도 현감·영장·방어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금정산성을 축조한 공으로 길이 잘 든 말을 하사받았다. 금정산성은 경상도관찰사 조태동이 1702년(숙종 28) 축성을 건의하였고, 『동래부지』에 의하면 1703년(숙종 29)에 완성되었다고 한 걸로 보아 이 무렵에 관인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숙종실록』에는 1718년(숙종 44) 4월 대간으로부터 “창원부사 박정빈은 본래 양산의 향리 출신인데 갑자기 집 가까운 큰 고을의 부사에 제수되었으니, 청컨대 개차하소서”라는 건의를 받은 후에 곧 바로 교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박정빈은 죽은 후에 1738년(영조 14) 왕으로부터 글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오직 영(靈)은 죽전(竹箭)에 단미(檀美)하고, 기궁(箕弓)이 전업(專業)이라, 언어는 순순(恂恂)하고 자태는 홀홀한지라. 남전(藍田)에 사석(射石)하니 소년에 이름을 떨쳤다. 신식거안(新息據鞍)하니 노경(老境)에 더욱 장건(壯健)한지라. 중외에 두루 시험하니 그 업적이 현저한 지라. 4진(鎭)에 치수(治戍)하니 3읍에 혜택이 피었도다. 또한 앞서 해변을 방어함에 병정(兵政)이 극히 엄정하였도다. 포등수계(褒騰繡啓)하여 총이증질(寵以增秩)하였노라.

은혜가 기로(耆老)에 미치니 금대가 황황(煌煌)토다. 파파황발(皤皤黃髮)이여 오아상향(娛我桑鄕)이라. 임진년에 벼슬에 올라 구갑(舊甲)이 중회(重回)라. 관화(官花)는 재반(再飯)하고 은뇌(恩賚)는 편번(便蕃)이라. 오직 치덕(齒德)과 관작이 복이(福履)가 편안한지라. 밤과 낮은 상리(常理)라. 두드린들 무엇을 슬퍼하리. 경의 순의(醇懿)함을 생각하니 그 용기만이 아니로다. 허우산질(虛紆散秩)하여 구용(久用)하지 못한 것이 애석하도다. 토저지사(兎苴之思)가 더욱 내 마음을 맹맹하게 하도다. 예관으로 치제(致祭)케 하노니 흠체(歆餟)하라.”라는 것이었다.

[묘소]

박정빈의 묘소는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석총조에 의하면 “고을 북쪽 호계촌 뒤에 있다. 사복정 심노숭이 지문(誌文)을 지었고, 참판 권익상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10.15 [가계] 수정 <변경 전>아들은 박동석(朴東奭)이다. <변경 후> 아버지는 박주한(朴柱漢)이고, 할아버지는 박동석(朴東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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