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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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南-聖趾 |
영어공식명칭 | Chonamisongji(Holy Place)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초남신기길 122-1[남계리 37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하태진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는 천주교 성지.
[개설]
초남이성지는 전라도 지역에 천주교 신앙을 전파했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생가터이다. 전라도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는 유항검이다. 유항검은 초남[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유항검은 세례를 받고 고향에 와서 가족들과 노비들, 집안에 속해 있는 가속들, 유항검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유항검으로 말미암아 전주[전라북도 전주시], 김제[전라북도 김제시], 정읍[전라북도 정읍시], 고창[전라북도 고창군], 영광[전라남도 영광군]에 천주교가 전파되었다. 조선시대 교회 지도자들은 유항검을 호남의 지도자로 뽑았다. 1791년(정조 15) 윤지충의 순교로 유항검도 박해를 받았지만, 거짓 배교[자기가 신봉한 종교를 등지고 신앙생활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고 신앙생활을 지속하였다. 1795년에는 주문모 신부가 유항검의 집을 방문하여 성사[가톨릭교회 및 정교회에서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주는 종교의식]를 주고 갔으며, 이후 신앙의 자유와 선교사 영입을 위해 대박청래운동을 유항검에게 명령하였다. 유항검과 전라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편지를 작성하고 연대 서명을 한 후, 윤지충의 동생 윤지헌이 추천한 밀사를 베이징[北京]에 파견하였다. 이에 필요한 경비의 대부분은 유항검이 부담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신유교난, 신유옥사] 때 제일 먼저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으며, 1801(순조 1)년 음력 9월 11일 사형 판결을 받고 1801년 9월 17일 전주 풍남문 밖에서 그의 동료들과 함께 처형당하였다. 유항검의 재산은 몰수당하였고, 가족들은 연좌에 의해 끌려갔으며, 유항검의 집은 파가 저택이라 하여 허물고 유항검의 집터는 파서 웅덩이로 만들었다. 유항검 일가의 시신은 초남이 옆 바우배기에 묻혀 있다가 1914년 4월 19일 지금 치명자산성지 정상에 옮겨 묻었다. 이들 중 유항검, 유중철, 이순이, 유문석, 유중성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성인으로 인정하기 전에 공식으로 공경할 수 있다고 교회가 인정하는 지위]에 올려졌다.
[설립 목적]
유항검의 생가는 전라도 천주교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였다. 호남교회사연구소 김진소 신부는 1970년대 수년간 유항검의 생가 일대를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후에 원동에 사는 한 유학자의 도움으로 지금의 터를 확인하게 되었고,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관찬사료의 발견으로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전주교구 50주년 사업분과위원회에서는 유항검 생가터의 매입을 결정하였고, 이 일을 동산동성당 주임인 권이복 신부에게 일임하여 지금의 초남이성지의 기틀을 닦게 하였다.
[변천]
초남이성지의 조성은 2000년 1월 김환철 신부의 부임으로 시작되었다. 유항검 생가터 웅덩이 공사를 시작으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다락방 신축, 버스 주차장 매입, 교리당 조성 등을 하였고, 주변의 토지들을 매입하였다. 2011년 부임한 하태진 신부는 경당 리모델링, 무허가 건물 철거, 주변 토지 매입 등을 하였으며, 성지의 숙원 사업인 “유항검 나눔의 집”을 신축하여 순례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김환철 신부는 “은사회”와 “은총회”를 조직하여 시복시성운동을 하였으며, 매년 10월 “루갈다 시집온 날” 기념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후 “요안루갈다제”의 정기적인 행사로 초남이성지에서 치명자산성지까지 도보순례를 실시하고 있다.
[현황]
2017년 12월 31일 현재 주임신부는 하태진 스테파노, 수녀는 김 젬마이다.
[의의와 평가]
초남이성지는 전라도 천주교 신앙의 초석이 된 곳이다. 전라북도 전주시의 치명자산성지, 숲정이성지, 전동성당과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연결되는 성지로서 그 의미를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