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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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內月里 |
영어공식명칭 | Naewol-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성욱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내월리는 비봉면의 7개 법정리 중의 하나로 동리, 명곡, 중리, 원내월, 천호마을이 있다.
[명칭 유래]
[형성 및 변천]
내월리는 본래 고산군 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천호, 명곡, 내월, 동리, 소농, 송치 각 일부와 북상면의 명곡을 통합해서 중심마을 이름을 따서 ‘내월리’라 하고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고, 전주읍을 제외한 전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완주군으로 개칭되면서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내월리는 비봉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완주군 비봉면 대치리와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 익산시 왕궁면 동봉리 및 익산시 왕궁면 동룡리, 동쪽은 완주군 비봉면 백도리, 남쪽은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북쪽에는 천호천이 시작되는 천호산[500.2m], 대치[290m], 수봉산[426.5m]이 있으며, 서쪽의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 방면으로는 문드러미재[250m]가 있다.
마을은 천호천을 중심으로 모두 동쪽에 위치하는데, 상류로부터 천호, 명곡, 동리, 내월, 중리마을이 있다. 천호천은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의 서쪽에 치우쳐서 흐른다. 천호천은 천호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무능제→천호마을→내월리→소농리→봉산리→고산면 어우리를 거쳐 고산천으로 합류한다. 지류에는 8개의 저수지[무능제, 천호제, 명곡제, 내월제, 방곡제, 율동제, 사치제, 율소제]가 있으며, 골짜기는 12개가 있고, 비봉산과 봉실산 사이를 흐른다. 천호천을 따라서 천호마을[160m]-명곡[120m]-동리[110m]-중리[110m]-방곡[110m]-소농[110m]-사치[110m]-용동[110m]-죽산[110m]-봉산[100m]-어우리 합류점[100m]으로 내월리에서 비봉면 소농리 그리고 하류의 비봉면 봉산리까지 해발고도가 약 60m 정도 차이가 있다. 천호천의 상류 부분인 비봉면 내월리의 천호마을에서 동리까지는 해발고도 50m 차이의 급경사를 이루지만, 동리에서부터 하류의 봉산까지는 해발고도의 차이가 10m 정도로 완만하게 흐르고 있다. 천호산(天壺山)[500.2m]은 산 정상 부분에 산성이 있어서 비봉면 대치리에서는 ‘성태봉’이라고도 불리는데, 원래는 ‘호산’이라고 불리다가[익산시 여산면의 호산리] 후에 ‘천(天)’자가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천호산은 비봉면의 대치리와 내월리 그리고 익산시 여산면의 호산리의 경계지점에 위치한다. 천호산의 남쪽 아래에는 천호성지가 위치한다. 천호산의 산줄기는 북쪽으로는 함박봉, 작봉산을 거쳐 금남정맥의 운장산[1,126m]으로 이어지며, 남서쪽으로는 익산 금마의 미륵산[430.2m]으로 연결된다. 운장산-천호산-미륵산의 산줄기를 금남정맥의 줄기로 ‘금남기맥’으로 불리기도 한다. 천호산 상봉에 위치하는 대치산성은 산 정상부를 에워싼 테뫼식 산성이며, 대치산성에서는 충청남도 논산과 전라북도 김제의 평야지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백제시대 동방성의 외곽성으로 추정되며, 주변의 고성산성[완주군 화산면], 성뫼산성[완주군 비봉면], 이전리산성[완주군 비봉면 이전리]과 연결되고, 성 둘레는 약 800m로 석축산성이다. 수봉산(首鳳山)[426.5m]은 비봉면 내부에 위치하는데, 대치리와 내월리 그리고 백도리의 경계지점에 위치한다. 비봉면의 3개 주요 하천인 대치천, 천호천, 용화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현황]
1980년 내월리 인구수는 751명이었으나 2015년에는 421명으로 330명이 감소했다. 면적은 8.27㎢며, 2018년 6월 30일 기준 인구수는 총182세대, 396명[남 213명, 여 183명]이다.
지방도 제741호선이 남북으로 연결되어 완주군 고산면과 익산시 여산면을 연결하고 있으며, 여산면과의 경계에는 문드러미재[250m]가 있다. 그리고 천호마을에서 대치로와 교차하고 있다. 천호마을은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해서 충청도 신도들이 목숨을 보전하고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골짜기로 들어와서 신앙공동체를 이루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무능골에 정착했었는데, 이후 서서히 내려와 현재의 마을터[다리실, 용추내]를 이루었다.
천호성지에는 1866년 12월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6명의 성인 중 손선지[1820~1866, 베드로], 정문호[일명 基植, 1801~1866, 바르톨로메오], 한재권[일명 한원서, 1836~1866, 요셉] 등 3위와 이명서[일명 在德, 1821~1866, 베드로] 등을 모시고 있다. 이 중 정문호, 한원서, 손선지, 조화서, 이명서, 정원지, 조윤호 등 7명은 1984년 5월 6일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천호산 일대에는 가장 큰 마을이자 중심지인 천호[다리실, 용추내], 산수골, 어름골, 낙수골, 불당골, 성채골, 시목동 등 모두 7개의 공소가 형성되었으나, 현재는 천호, 성채골, 산수골 등 3개의 공소만 남아 있다. 1906년 베르몽(Bermond)[睦世榮, 1881~1967] 신부가 고산본당에 부임해 신자들과 협력해서 148만 7603.31㎡ 정도의 천호 일대 산지를 매입함으로써 순교자의 묘역과 신자들의 터전이 조성되었다. 1939년 기해박해 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손선지 등을 비롯한 6위의 순교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1983년 호남교회사연구소가 정문호, 한원서 등의 유해를 발굴한 후, 현재의 순교자 묘역에 이장했고, 1987년 피정의 집이 건립되었다. 내월리에는 삼현사, 구의사 사적비, 봉양서원이 있다. 삼현사(三賢祠)[비봉면 내월리 49]는 원래 ‘삼현영당(三賢影堂)’이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고흥류씨 문중에 의해 1958년 가묘와 같이 세워진 사당이다. 이 사당에는 류몽인, 류숙, 류중교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다. 구의사[9명] 사적비는 1982년 5월 고흥류씨들에 의해서 내월리에 세워졌다. 1907년에 비봉면을 근거지로 의병이 조직되었는데 이들의 주체는 12인이었다. 이 중 1909년 유지명이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고, 1910년 10월에는 유중화가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그리고 1916년에는 나머지 10인이 체포되었다. 내월리 구의사 사적비는 이들 12인 중 고흥류씨 9명을 모신 것이다[유중화, 유현석, 유준석, 유영석, 유태석, 유명석, 유연청, 유연봉, 유연풍]. 봉양서원(鳳陽書院)[내월리 464]은 1966년에 세워졌으며, 최서림, 유종홍, 김집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