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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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谷里 |
영어공식명칭 | Gwanggok-ri |
이칭/별칭 | 너브실,광곡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명광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광곡리는 본래 전주군 구이면 지역으로 지형이 넓다고 해서 ‘너브실’ 또는 ‘광곡’이라고 했다.
[형성 및 변천]
광곡리는 본래 전주군 구이면 지역으로 일제강점기인 1914년 지방행정제도를 전면 개편함에 따라 광곡리, 화원리, 난산리, 봉성리, 신월리, 신흥리, 효간리와 박성리, 구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광곡리’라 해 전주군 구이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35년 전주군이 전주부로 승격함에 따라 완주군 구이면으로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광곡리는 남으로 옥녀봉이 있고, 북으로 광곡저수지가 있어 남쪽은 산지에서 북쪽으로 점점 낮아지는 지형이다. 자연마을로는 원광곡, 난산, 화원, 신원이 있다. 원광곡은 경각산, 경각산 계곡, 고덕산, 보광재[광곡-전주]라는 고개가 있고, 노루목이라는 고개가 최근에 생겼다. 광곡리의 자연마을인 난산마을에는 광곡저수지가 있다.
[현황]
광곡리의 면적은 9.60㎢에 2018년 6월 30일 기준 인구수는 총 189세대에 414명[남 210명, 여 204명]이다.
광곡리의 자연마을로는 원광곡, 난산, 화원, 신원이 있다. 원광곡[너브실]의 부분명은 효간으로 ‘광곡’은 비교적 넓은 골짜기로 생긴 명칭이다. 효간은 신흥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광곡’이라는 말은 넓다는 의미이며 본래 지명은 빛 ‘광(光)’자에 계곡 ‘곡(谷)’자를 써서 빛이 비춰지는 계곡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원광곡은 진주정씨를 중심으로 한 집성촌으로 재실과 사당이 마을의 상징일 정도이다. 원광곡에는 정각사와 정씨 재각이 있다. 난산의 부분명은 신흥으로, ‘난산’은 뒷산 이름이 난산인데 뒷산에 비봉포란혈이 있다고 한다. 신흥은 난산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명명된 이름이다. 덕암에는 ‘소년바우’라는 큰 바위가 있으니 ‘큰바우’에서 ‘덕암’으로 본다, 덕은 크다는 말의 새김으로도 많이 쓰였다. 저수지가 생기기 전에 봉성리가 있었다. 봉황의 모습을 닮았는데 봉황이 알을 낳은 마을이 옹성, 난산이라고 한다. 40년 전에 광곡저수지가 생겼다. 화원의 부분명은 박성동으로 예전에 박씨촌으로 집성촌을 이루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말로 한골인데 큰 골짜기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마을 이름은 1914년에 일본인들이 조세포탈을 위해 모두 한자이름으로 바꿔 우리의 순수한 이름이 없어졌다고 한다.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에 경복사지 절터가 있는데 화원마을에서도 올라갈 수 있으며, 고구려가 망하고 통일신라 즈음인 660~700년 정도에 건축되었다. 신라 말 고려 초에 5교 9산이 있었는데 5교 중 열반종의 본산이 바로 경복사였다. 조선 중기 때 불교탄압으로 없어졌으나, 없어지기 전까지 전국에서 상하보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다녔다고 한다. 특히 경복사지에는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었으며 그 자리에 큰 바위가 있어서 승려가 쉬면서 기도도 했다고 전해지나 느티나무는 사라졌다. 화원마을은 구이면 중에서도 덕천리, 원기리와 더불어 문화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신원은 화원리 위에 새로 생긴 마을이며, 전에는 난산 동쪽에 봉성이라는 마을이 있었으나 광곡저수지로 인해 수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