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
최필달·최흔봉·최문한을 시조로 하고 최복하·최운생·최두홍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강릉최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계통을 달리하는 고려초 삼중대광으로 개국공신이었던 최필달계, 고려 태조의 부마였던 최흔봉계, 고려 충숙황의 부마로 삼중대광에 오른 최문한계의 세 계통이 있다. 후손들은 강원도 강릉을 중심으로 명주, 양양 지역에 세거하였는데,...
-
영분공을 시조로 하고 김백규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경주김씨의 시조는 김알지이고, 후손의 계파가 매우 복잡하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경주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셋째아들 영분공의 후손이다. 1775년(영조 51)에 김백규는 노소론의 당쟁을 피하여 전라남도 강진에서 울진군 산두촌에 입향하였다. 문장공 김태서의 후손인 김한동은 정조 때 양양에...
-
935년 신라가 멸망하기 이전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 지역은 진한 소국의 하나인 우중국이 있다가 신라에 병합된 뒤, 한 때 고구려와 신라의 충돌지역이 되기도 했으나, 결국 신라의 영역으로서 국가제사인 소사가 설치된 중요한 곳이었다. 진한은 3세기 중엽경까지는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소국연맹체였으며, 진한 12국 가운데 하나인 우중국(優中國)이...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소재하는 관동팔경 중의 망양정과 월송정. 울진은 경상북도 동쪽 최북단 해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6만여 명이 사는 고장이다. 원래는 북쪽에는 울진군, 남쪽에는 평해군으로 다른 행정체제를 갖고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두 군을 합쳐 지금의 울진군이 되었다. 또 그동안 강원도에 속해오던 것을 1963년부터 경상북도로 옮겨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경상북도 울진군 망양정과 월송정을 포함한 관동팔경 병풍 그림. 각폭 세로 59㎝, 가로 30.5㎝ 크기의 8폭 민화 병풍으로,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平海)의 월송정(越松亭)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
통일신라시대 울진 지역을 식읍으로 받아 지배권을 행사한 진골 귀족. 원성왕(元聖王)의 즉위와 김주원의 명주 퇴거는 무열왕계에서 부활 내물왕계로 왕권이 실질적으로 넘어가는 시점으로, 이때부터 사실상 신라 하대가 전개되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명주로 퇴거한 김주원은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하여지고 아울러 강릉 등 인근 지역을 식읍으로 받아 지방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함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을 지나가는 통일신라시대 동해안 교통로. 신라는 삼국통일 후 지방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교통로를 정비하였다. 『삼국사기』 권37 지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조(三國有名未詳地分條)에는 경주 왕경을 중심으로 한 북해통(北海通)·염지통(鹽池通)·동해통(東海通)·해남통(海南通)·북요통(北傜通)이라는 5통의 교통로가 열거되어 있다. 5통은 왕도를 중...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했던 평민 의병장.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순경(舜卿). 신석주(申錫柱)의 아들이다. 신돌석(申乭石)의 본명은 신태호(申泰浩)이고, 신태홍(申泰洪)·신태을(申泰乙)·신대호(申大浩) 등으로도 불렸다. 경상도 영해(寧海)[현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신돌석은 19세의 젊은 나이로 1...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구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간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신석기시대는 원시 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 생산 경제를 배경으로 정착 생활·토기·간석기 등으로 대표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농경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토기의 제작이나 간석기와 같은 신석기 문화의 특성을 갖춘 곳이 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농경보다는 토기군이 출현한 때부터 기원전 8...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군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는 군이다.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봉화군과 영양군, 남쪽은 영덕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와 접한다. 경상북도 23개 시·군 중에서 8번째로 면적이 크다. 지금의 울진군은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북쪽의 울진 지역과 남쪽의 평해 지역으로 구분되어 서로 다른 행정 체계로 되어 있...
-
19세기 전반 서울에서 봉화에 이르는 길이 간선도로로 승격되어 7대로가 형성되면서 울진군 북면에서 봉화를 연결하는 교통로인 십이령 길이 동서를 연결하는 대표 도로가 되었다. 울진의 흥부장·읍내장·봉화의 내성장 등 장시가 열리면서 이들 장시가 십이령 길을 통해 연결되었다. 십이령을 넘나들며 울진과 봉화 지역의 장시를 장악하였던 보부상이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퇴조하자 그 역할을 대신...
-
임우를 시조로 하고 울진을 본관으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울진임씨는 도시조격인 임팔급의 후손들에서 분적하여 여러 관향을 사용하는 임씨 가운데 하나이다. 당나라 문종 때 한림학사였던 임팔급은 동래한 여덟 학사 가운데 한 명이다. 임팔급의 후손들은 평택·옥구·개령·예천·임하·안동·길안·전주·보성·양양·순창·부안·선산·밀양·장흥·은진·진주·경주·울진...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고려시대 정자. 월송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송림에 자리 잡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동해시에 이르면 국도 7호선과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국도 7호선을 타고 달려 동해시를 벗어나 삼척시를 지나면 울진으로 접어든다.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진을 벗어나 영덕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도...
-
676년부터 935년까지 통일신라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후 685년(신문왕 5)에 영토를 9주(州)로 분할하였다. 이때 동해안 일대를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편제하였으며, 울진을 명주에 소속시켰다. 울진이라는 명칭은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 와서 보배가 많아 울창할 ‘울(蔚)’자와 보배 ‘진(珍)...
-
불영계곡과 왕피천은 천혜의 비경과 자연을 지닌 울진군이 그 중에서도 가장 자랑하는 청정 지역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일대는 곳곳에 협곡과 유려한 지형 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오랜 세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멸종위기종·보호종 등 야생 동물들이 서식할 수 있었는데, 특히 1~2급수에서만 사는 멸종위기종인 한둑중개가 서식하고 있다. 또한 울진의 대표적인 금강...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신석기시대 집단 무덤. 후포리 선사유적은 후포3리의 바다쪽으로 돌출한 해안단구 상면인 해발 45m의 등기산[속칭 등대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정상부의 동쪽과 남쪽은 해안 절벽이다. 이곳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동북쪽과 동남쪽에는 동해가 펼쳐져 있고, 뒤쪽에는 후포항과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이러한 입지는 바다와 관계가 깊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