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1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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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飮食店 |
영어공식명칭 | Restaurant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목진호 |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서 음식물을 만들어 팔거나 사서 먹을 수 있는 가게.
[개설]
시흥시의 숙박·음식점업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는 인구 증가율과 함께 증가하였다. 외식 인구가 늘어나면서 음식점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 중반부터이다. 이 시기는 국민소득이 3천 달러로 진입하면서 가구별 소득이 늘고 외식비를 많이 지출한 시점이다.
[변천]
1999~2003년 시흥시의 숙박·음식점업 사업체 수는 전국 평균 수준인 4,353개에 비해 76.9%에 불과한 3,347개에 그친다. 20명 이상 사업체 수 비중은 전국 평균 0.5%에 비해 0.3%로 낮은 반면, 5명에서 19명까지의 비중은 전국 평균 8.2%에 비해 10.1%로 높다. 따라서 중간 규모의 사업체에 종사자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명에서 4명까지의 작은 규모에서는 전국 평균 91.3%에 비해 시흥시는 89.6%로 낮다. 시흥시의 숙박·음식점업 사업체는 회사나 법인 사업체보다는 개인 사업체의 비중이 다소 높게 나타났다.
1995년과 2004년 시흥시의 산업별 인구 구성에서 업종별 종목 중 숙박·음식점업은 433.7%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 증가율의 근거는 1995년 숙박·음식점업의 종사자 수가 2,111명에서 2004년 1만 1266명으로 증가한 데에 따른다. 전체 구성비로 보면 1995년에는 4.7%이었는데, 10년이 지난 2004년에는 8.0%로 증가한 것이다.
[내용]
시흥 지역 도일시장의 미곡상(米穀商) 정한일(鄭漢一)은 도일시장의 규모가 컸으며 국밥 집도 있었고 먹거리 난전(亂廛)도 많았다고 한다. 소래 일대의 횟집 등 어업과 관련된 음식점도 많다. 정왕동의 김형호 구술에 의하면 예전부터 오이도 군자염전과 옥구도염전, 그리고 군자염전의 평양촌 근처 등에도 음식점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2006년 물왕동 안말에도 원주민들이 거의 떠나고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섰다고 하며, 오이도 일대에도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시흥 군자봉 성황제의 유가(遊街) 행렬이 오이도 일대 음식점을 방문하여 고사와 축원을 행하기도 한다.
시화국가산업단지 배후에 조성된 아파트 단지에도 음식점이 곳곳에 가득하다. 주거 지역 아파트 단지 4차선 및 8차선 도로에 세워진 근린 상가 건물에는 학원, 은행, 식료품점 등과 함께 음식점이 즐비하다. 20대의 젊은이들은 시화국가산업단지의 공장에서 일하기보다 공장 주변의 카센터나 음식점 등 서비스 업종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또한 월곶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와 월곶포구의 바다와 가까운 근린 상가 지대에도 관광과 유흥 목적의 음식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흥시 민속주로 자리매김한 삼해주(三亥酒) 전승자 신효순(申孝順)[1947년생]은 강원도 홍천에서 살다가 1968년 선을 보고 시흥군 수암면 조남리 새미마을의 서일부과 결혼해 이주한 경우이다. 신효순은 '표주박'이라는 음식점을 차리고 오리 철판구이, 닭백숙, 보신탕, 막걸리 등을 팔았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지금의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놓인 후 공장이 들어서 함바집[건설 현장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신효순은 시어머니 나기찬(羅基瓚)[1913년생]으로부터 삼해주 담그는 법을 배워 2000년 제1회 시흥시 특색 요리 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